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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출향인

출향인 인터뷰-세계가 주목하는 바리톤 이응광

김민성 기자 입력 2019.09.30 13:16 수정 2019.10.02 13:16

“나를 만들어 준 김천, 이젠 고향 위해 노래 부르고파”

청중을 압도하는 무대 매너
중후한 중저음 보이스
유럽이 반한 성악가


ⓒ 김천신문

이응광(38세)의 무대는 청중을 압도한다.
베이스의 깊은 음색과 테너의 화려함을 모두 갖춘 부드럽고 중후한 중저음의 목소리는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뛰어난 연기력과 적재적소에서 발현하는 위트, 적절한 애드리브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러한 실력의 그를 세계도 주목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해 온 이응광은 2020/2021시즌 스위스 루체른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할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타이틀 롤인 피가로역에 발탁됐다.
유럽 활동 틈틈이 국내에서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2017년 피아니스트 한상일과 말러‧리스트‧리흐마니노프를 프로그램으로 전국투어 리사이틀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2018년 통영국제음악제와 2019년 베를린에서 몬테베르디 율리시스의 귀환을 각색한 ‘귀향’의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했다. 또 지난해 가을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과 함께한 오페라 ‘돈카를로’에서 로드리고역을 훌륭히 소화해 호평받기도 했다.
ⓒ 김천신문

구성면 출신인 이응광은 구성중, 성의고,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 디플롬,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독일 알렉산더 지라르디 국제콩쿠르 1위,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콩쿠르 1위 및 3개의 특별상 수상, 스위스 에른스트 해플리거 국제콩쿠르 1위 등의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국립오페라단 ‘라 보엠’ 마르첼로 역으로 국내 데뷔 후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 전속 주역 가수를 역임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리바 델 가르다 음악페스티벌, 스위스 베른 시립극장,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 콩피에뉴 임페리얼 극장, 독일 자브뤽켄 국립극장, 일본 나고야, 토야마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 예술의전당 오페라 프로덕션,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함께 오네긴, 가면무도회, 리골렛토, 아이다, 스페이드의 여왕, 피가로의 결혼, 마농 등 수 백회의 공연을 마쳤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아이

어린 응광은 노래 부르기를 유달리 좋아하던 아이였다.
중학교 신입생 시절 응광은 자신이 다니던 구성교회의 청장년부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어 며칠간 목사 사모를 조르기도 했다.
성의고에 입학해서 소원을 풀게 된다.
학교밴드인 ‘헤라클레스’에 보컬리스트로 입단했으며 김천연합 고교크리스천 찬양단인 ‘리틀글로리 LG 찬양단’에서도 활동하게 된 것.
그가 클래식을 택한 이유도 대중가요나 다른 음악보다 오랫동안 길게 노래할 수 있어서다.
본격적으로 성악을 시작한 건 고교 2학년부터다.
같은 찬양단 단원 선배인 박유숙 김천대 학생의 도움으로 서울대 음대 출신의 김천대 이태원 교수에게 테스트 받을 기회를 얻어 성악과의 연이 닿았다.
이태원 교수는 그가 부른 가곡 ‘비목’을 듣고는 바로 “테크닉이 빵점이다”라고 혹평했다.
실망하려던 찰나 “그런데 소리는 100점이다”라며 당시 김천대에 출강하던 서울의 강종영 성악교수에게 그를 소개했다.

꿈을 향해 달리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기 위해 무궁화호 기차로 서울을 오갔다.
3시간을 기차로 달려 1시간 수업을 듣고 3시간을 내려오는 일이 힘들 법도 한 데 그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귀향길에는 카세트 플레이어로 녹음한 수업내용을 들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으로 충만했다고.
성악을 하기에 그리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다.
일찍 남편을 여읜 어머니 혼자 구성에서 양파 농사를 지어 그와 3명의 누나, 4남매를 뒷바라지했다. 누나 둘이 대학을 다니고 있어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그가 처음 성악을 한다고 했을 땐 반대도 있었다.
누나들이 장학금을 받고 있었지만 그래도 서울을 오가는 성악 레슨비는 큰 부담이었다.
어머니가 교수에게 간곡히 부탁해 수업료를 회 5만원으로 인하하며 그의 서울행 레슨은 무사히 성사될 수 있었다.

고마운 김천

이응광은 인덕이 많다.
고3 담임이던 이상국 선생은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서울 갈 때 가끔 용돈을 챙겨주고 공부도 틈틈이 봐주며 그를 아꼈다.
성의총동창회의 도움도 컸다. 성의고 최초로, 수시가 아닌 정시에서 서울대 장학생으로 당당히 합격한 그에게 4년 내내 등록금을 지원했다.
당시 총동창회장이던 이창수 회장은 후원회장을 자처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김수한 추기경과 김천 출신 유명인사인 최수부 광동제약회장, 강학서 현대제철 사장 등을 모두 초청한 후원음악회를 열어 유학경비를 마련, 보탬을 주기도 했다.
성의고 출신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출신의 김천 출향인과 재경향우회에서도 그를 후원했다.
타 지역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도 있었다. 합창단 조은희 지휘자가 소개해 준 이천의 박의협 법무사는 대학 2학년 때부터 3년간 매해 600만원을 지원했다.
“특히 김천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 당시에는 사람의 힘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착착 도움의 손길이 느껴졌어요. ‘나는 왜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오죽하면 서울대 동기들이 “다음 생에는 나도 김천에서 태어나야겠다”라는 부러움 섞인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니까요.”
이런 후원들을 받으며 그의 책임감도 무거워졌다.
대학에 입학해 생활비는 꾸준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마련했다.
독일 유학 시절에도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에 취업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많은 사람의 지원과 격려를 받으며 그의 성공에 대한 의지는 커져갔다.
ⓒ 김천신문

‘라 보엠’ 마르첼로 역으로 데뷔

2007년 드디어 첫 무대에 올랐다.
국립오페라단의 ‘푸치니-라 보엠’에서 마르첼로 역으로 데뷔해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연기와 노래 모두 좋은 평을 받았으나 3번의 예정된 공연을 다 해내지 못했다.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난 화재로 인해 마지막 공연은 결국 올리지 못한 채 무대의 막이 내렸다.
아쉬움이 컸지만 2008년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왔다.
학비를 벌기 위해 단역으로 취직한 스위스 바젤 오페라 극장에서 마르첼로 역이 갑자기 펑크가 났다.
해당배역 연기 경험이 있는 그가 오디션을 보게 되고 이탈리아 Maurizio Barbacini 유명지휘자와 극장관계자들 앞에서 마침내 당당히 배역을 따냈다. 그의 공연을 본 Dietmar Schwarz 오페라 감독(현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장)은 다음 날 바로 정식계약을 제안해와 그는 2008년~2015년까지 바젤의 정식주역단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무대에 서는 매 순간이 긴장됩니다. 오페라는 서양문화인데 아시아인 얼굴을 한 제가 그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죠. 특히 이태리어, 러시아어 등 오리지널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엄청난 트레이닝을 합니다. 외국 사람이 한국 창을 부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피나는 노력은 당연한 거죠.”

아내와의 첫 만남

2008년 대구 장사익콘서트 오페라하우스 리허설에서 지금의 아내 이주영(34세)을 처음 만났다. 이응광의 지인과 함께 리허설을 보러 온 아내도 성악전공의 소프라노였다.
이응광은 공연 후 바로 독일로 떠나야 해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반년 동안 인터넷 화상으로만 만나게 된다. 이후 이응광의 권유로 아내도 스위스 유학길에 오른다.
타국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연인은 2009년 7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들 부부는 현재 9세, 7세 2녀를 두고 있다.
↑↑ Theater Basel 이응광 부부
ⓒ 김천신문

영원한 멘토 연광철

그가 가장 존경하는 성악가는 베이스 연광철이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이응광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레슨을 해줬으며 현실적 조언도 해주고 있다.
연광철은 베를린 국립예술대를 나와 베를린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단 단원, 서울대 음대 교수를 역임한 세계적 베이스이다. 제28회 호암상 예술상, 제9회 대원음악상 대상, 제46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콩쿠르 우승 등의 경력도 화려하다.
이응광이 생각하는 최고의 성악가이기도 하다.
↑↑ 스승과 함께 공연한 '돈카를로'
ⓒ 김천신문

후배들을 위한 조언

같은 길을 걷고 싶은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거창하고 큰 꿈도 좋죠. 하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더 도움됩니다. 5년 후 당신이 뭐가 돼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막연한 꿈보다 가깝게는 1년, 또는 5년 후 나를 생각해 보고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떻게 사용할지 짜임새 있게 계획하고 현재에 충실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좋은 사람,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김천 위해 노래 부르고파

이응광 초청 오페라 갈라 콘서트가 9월 27일 김천시문화예술회관에서 국내 유명 연주가와 무용수 또 이태리, 스페인, 러시아 성악가들이 출연해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밀라노 유명극장을 방불케 한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은 연신 ‘브라보’를 외치며 환호했다.
이런 호응은 클래식이 생소한 관객들에게 이응광이 노래 사이사이에 나와 쉽고 재미있는 설명을 통해 이해도를 높였기에 가능했다.
이응광은 이런 음악회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김천국제음악제나 오페라 갈라쇼, 가곡 콘서트 등 어떤 형태로든 정기적으로 열리길 희망한다.
그동안 김천이 베푼 은혜에 이제 보답하고 싶은 그다. 10월 15일 열리는 김천시민체육대회에서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김천시의 제안도 흔쾌히 응했다.
재능과 인맥을 동원해 해외 젊은 클래식 가수를 초청한 국제대회를 열어 김천시민들이 클래식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는 게 현재 그의 꿈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클래식을 쉽게 풀어내는 정기프로그램을 기획, 연출해 시민들에게 교육적·문화적 혜택을 드리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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