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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올바른 정치, 그 수단으로서의 선거

전영수 기자 입력 2022.08.20 03:06 수정 2022.08.20 03:06

ⓒ 김천신문
정치는 경제와 더불어 사회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영역이다. 자신의 존재에서 소외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능동적 정치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손으로 더듬어 찾는’ 방식으로 정치를 원점부터 재고해야 한다.

대중(大衆)은 정치를 구경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이자, 자신의 의지(意志)에 따라 변(變)할 수도 있다는 것은 별로 의식하지 못한다. 누구나(anyone) 정치의 당사자이며, 현재의 정치가 내포한 숱한 적폐와 병폐들의 공동정범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자치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근대적 정치환경에서 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대리자를 통한 간접지배인 대의제적 요소를 포함한다. 시민이 대리자에게 주권을 양도하는 것은 사회계약적 측면에서 사회적 안정과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대표제(Representation)와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성어이다. 대표(代表)라는 것은, 대표자의 역할에 대해 순수한 대리(代理)에서 완전한 자율(自律) 사이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1884년 한성순보를 통해 소개된 일본식 번역어인 대의(代議)는 대표제나 대표자의 기능과 역할을 “대신 의논(議論)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개념이다. 즉, 대의가 함의(含意)하는 바는 ‘대표되는 사람들’의 의지가 반영돼야 한다는 의미보다, 대표자들이 의논을 통해서 ‘그들’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맥락이 강하다.

정치적 통치형태로서 실질적 대표가 단순히 “대신하는 것”(standing for)인지, “위한 행위”(acting for)인지 여부는 대표되는 이들의 ‘의사의 재현’이 아닌 ‘관철하고자하는 바’에 중점을 두는가에 있다.

민주주의 본래적 의미인 ‘스스로 다스림’(自治, rule by themselves)과 ‘대표제’는 모순적 개념이다. 이를 감소시킬 방안으로, ‘서로를 다스리게 한다’(순환, rule by rotation), 추첨에 의한 결정(우연, rule by lot), 선거(election)를 생각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선거로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시민에게 선거(選擧)가 중요한 연유는 시대정신(時代精神)을 묻고 생각하며, 시대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이를 대리인으로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이 직접 날카롭게 묻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민주주의는 그 시대 시민의 정신만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김천의 시대정신은 “시민 모두가 행복(幸福)한 김천”이다. 행복이란 ‘곳간에서 인심(人心)난다’는 말이 있듯이, “물질적 풍요 속에 갖게 되는 정신적 만족”이라고 본다. 과연 14만 시민들은 현재의 경제생활에서 족(足)함을 느끼는가? 행여 예산 1조 3천여만원을 자랑하는 김천시만 풍족하고, 시민 개개인의 삶은 고단하진 않은가?

지난 6.1 지방선거 결과, 김천의 시민대표들 면면도 새로움의 빛이 스며있다. 곧 시의회의 시정업무전반에 대한 행정감사 및 결산심사가 시작된다. 시민의 편익을 최우선시하는 의정활동을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 시민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시의원들은 14만 시민의 공복으로 아울러 대의제의 standing for가 아닌 acting for 시의회로 운영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앞으로도 김천에는 중요한 선거가 이어져 온다. 우선 12월 22일 민선2기 김천시체육회장 선거가 있고, 2023년 3월 8일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있으며,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어느 하나도 경시할 수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선택들이다. 올바른 시민정신을 촉구한다.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살 수도 없는데, 어찌 내일을 설계할 수가 있을까? 새로움이 혁신과 개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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