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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오페라와 연극 중간쯤에 해당하는 공연예술이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이 대중에 환영을 받은 것은 오래지 않다. 21세기 들면서부터다. 그것도 거의가 국외에서 들어온 번안 작품이었다. 창작뮤지컬 ‘명성황후’가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모은 것이 2007년(1995년 초연)이다. 전통적으로 창극이 있었지만 이는 판소리로 하는 뮤지컬이랄까. 6·25전쟁 후 뮤지컬송이 이 땅에 들어오며 대중문화의 한 갈래가 되었다. 창작 오페라의 원조는 ‘살짜기 옵서예’(1966년 초연)다. 고소설 ‘배비장전’을 각색해 만들어 패티김, 김상희, 김하정 등의 가수가 대를 이어 오며 주연을 했다.
지금, 지방 소도시에서 제작한 뮤지컬 한 편이 도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인현왕후가 숨어 기도하다가 복위돼 올라간 청암사에서 공모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김천시가 만든 뮤지컬 인현왕후로 인해서다. 2019년 시 승격 70주년 기념으로 초연, 코로나 파동으로 중단했다가 올해 두 번째 공연했다. 김천시장이 매년 정기 공연하겠다고 직접 선언한 창작뮤지컬이다. 인현왕후 종친 후손인 필자는 유난한 관심을 가지고 관람했다. 언제 내 고장에 앉아서 국가적 버전 토종 뮤지컬을 맛 볼 수 있었던가.
제작진에 감사와 찬사를 보내드리고 싶다. 그런데 종합예술의 바탕인 극본에 역사적 정체성이 부족해 보인다. 조선 역사를 통털어 당쟁이 가장 심했던 시대,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서인 측의 핀치히터라면 장희빈은 남인 측의 대리타자였다. 지금껏 8번이나 사극 소재로 등장했다. 두 여인은 결국 정쟁의 제물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평이다.
폐위, 서인이 된 인현왕후는 어머니의 외가(상주 정경세 댁)를 통해 시녀 한 명을 데리고 김천 청암사에 은신하며 기도했다. 울진 불령사에 숨어 지내기도 했는데 거기선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가까스로 모면을 하기도 했다. 뮤지컬 ‘인현왕후’에선 극 전반부 거의를 청암사에 온 인현왕후의 대민 구휼활동을 그렸다. 신분과 동선을 감추고 시녀 한 명과 더불어 벽지 사찰에서 울분을 달래고 있었을 왕후 아닌 왕후가 공개적으로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냉철히 스토리텔링을 고심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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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역사에 의하면 서인이 된 인현왕후가 3년간 청암사에 숨어 있다 임금의 복위 교지를 받은 것으로 전한다. 이 모습은 현재 청암사에서 별도의 연례행사로 추진하고 있는 ‘인현왕후 복위식 재현’ 행사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인현왕후와 청암사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때의 왕후가 청암사 주위를 산책했음을 상정해 ‘인현왕후둘레길’이 조성됐다. 뮤지컬에서도 왕후가 산책하는 모습 한번쯤 보여줘도 좋았을 것이다.
폐위 5년만에 인현왕후가 복위된(갑술환국) 추동력은 서인 측 파워와 숙종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한 의도로 간주하는 것이 정설이다. 소론의 김춘택, 한중혁 등이, 폐위를 후회하는 숙종의 마을을 읽고 복위운동을 벌이다가 남인 측 민암 이의징 등이 소론을 제거하려다 실패한 데 있다. 치열한 당파싸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그 시대 사회의 배경이다. 이름 없는 외진 사찰에 숨어 지내는 폐왕후가 공개적으로 대민활동을 했다함에 복위의 추동력을 둠은 스토리 전개상 무리가 있어 보인다. 설령 그런 활동이 있었다 하더라도 비중이 과도하게 주어진 것은 아닐까. 민씨 문중사에 의하면 인현왕후가 청암사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밤중이나 새벽을 가리지 않고 시녀를 앞세워 상주로 도피하기가 일쑤였다고 전한다.
극 중에 ‘미나리요’를 섞어 넣어 작품에 역사성과 참신미를 더했다. 더한김에 왕후가 복위돼 입궐하고 난 뒤 청암사로 보낸 편지도 극 중에 삽입해 쓰면 현실감이 배가될 것이다. 인현왕후는 이 편지에서 “(청암사) 스님께서 저를 위해 마음쓰심과 제가 스님을 위해 은혜에 감사함은 다른 이가 말할 바가 아니”라고 하며 청암사에 비녀와 잔과 신을 선물로 보냈다.
결말 부분이 반전이나 스릴 없이 밋밋했다. 역사에 알려진 대로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그녀의 오빠 장희재 또한 국문 끝에 죽는 장면이 등장하면 반전의 감동이 컸을터이다. 숙종이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주된 동기는 숙빈 최씨(영조의 어머니)가 희빈 장씨의 인현왕후 저주 행위를 임금에게 고해바친 데에 있다. 그 저주행위란 장희빈이 별당에서 밤마다 인현왕후 초상화를 걸어놓고 화살로 쏘기,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기, 장희재가 주도하여 중궁전 계단에 유골 묻어놓기 따위의 행동거지였다. 이 제보를 들은 숙종이 어느 날 밤 찾아가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뮤지컬 공간적 배경 제시에 현실감이 매우 떨어진다. 극 중의 청암사 다층석탑은 실상과 거리가 멀고 무엇보다 인현왕후의 기도처였다는 보광전 모습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은 공간 배경 설정에 소홀하다는 평을 듣는다. 웅장한 멜로디와 노래의 절반만큼이나마 실경 배경 제시에 정성을 더 쏟았으면 한다. 청암사 주위의 산수 풍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뮤지컬 ‘인현왕후’ 제작진과 출연진, 스탭진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사극에서 극작가의 상상력이 기본 역사적 팩트를 침해, 왜곡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필자는 2019년 초연 후 극작가에게 10여 군데 기본적, 역사 사실이 왜곡돼 있음을 지적해 드린 적이 있다. 사극이라 하여 극작을 뮤지컬 제작 연습의 한 가지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남겨 아니 될 것이다.
지역사회의 역사 문화자원은 국가문화예술 발전의 뿌리가 된다. 향토의 역사문화 자원이 문화예술 비즈니스화함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시민들은 내 고장 역사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제작한 뮤지컬을 감상하며 애향심과 자긍심에 젖는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뮤지컬 ‘인현왕후’와 ‘인현왕후 복위식 재현’ 행사로 왕후가 김천에서 환생하는 것 같다. 뮤지컬 ‘인현왕후’가 소도시 김천의 한 브랜드행사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