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자치행정 종합

만약 그때에 방폐장을 유치했더라면

홍길동 기자 입력 2010.07.29 10:24 수정 2008.11.06 07:25

정라곤(시인.칼럼니스트), rgjeong@naver.com

영어 문장 가운데 ‘if ~'로 시작되는 가정(假定)법이라는 게 있다. 이 가정법의 전형적인 전개 방법은 “만약 어떠어떠했다면 (현재 상태는)어떠어떠하다”라는 전제로 과거에 그렇게 하지 못한 아쉬움의 표현이거나 현재 제대로 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의 한 방편일 수도 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1999년 말에 착공하고도 항공사들이 취항을 원하지 않아 10년 가까이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울진공항 건설의 잘못을 탓하면서 이 시설에 대해 정부가 ‘조종사 양성용 비행훈련원으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밝혔다. ‘꿩 대신에 닭’이라 하더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 울진공항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AFP통신이 선정한 '2007년 세계 10대 황당 뉴스'로 1320억원이나 들여 만들었으나 승객이 없어 휴업하고 있는 울진공항이 뽑혔다는 명예스럽지 못한 기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활주로 유지·보수 등에 매년 20억원을 써왔고 비행훈련원으로 바꾸는데 또 국민 세금을 써야 할 판이니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논조로 몰아붙였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낙후지역 지원을 평소 강조해왔던 필자로서는 할 이야기들이 많다. 울진이나 영덕지역은 서울을 기점으로 했을 때 도로사정이 가장 열악한 교통 오지(奧地)다. 필자가 공직에 있을 당시 매년 명절을 맞아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여러 해 동안 상당한 불편을 겪어왔다.

주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주에서 포항을 거쳐 영덕으로 갔는데 승용차로 여섯 시간 이상 걸렸다. 포항에서 영덕으로 난 7번 국도를 타면서 2차선 확장공사 현장을 20년 가까이 지켜보기도 했다. 여섯 시간이면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전남 해남의 땅끝 마을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인 만큼 동해안 고향지역은 교통오지 중 오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영덕이나 울진까지 가는 교통시간으로 치면 가장 먼 곳이다. 안동에서 영덕으로 가는 34번국도는 아직 1차선이고, 봉화를 지나 울진으로 가는 36번국도도 대부분이 1차선이다. 전국의 다른 지역을 다녀보면 시군과 시군지역을 잇는 국도는 거의 2차선임에 비해 동해안 지역은 이제 2차선 확포장을 하고 있으니 최후에 정리하는 곳이 되었다.

얼마 전 방폐장관리공단 울진유치문제로 지역여론이 들끓었다. 방폐장은 경주에 짓기로 확정되었다고 하지만 원전발전소가 가장 많이 들어서있는 울진지역에 관리공단을 유치하자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란 방사성폐기물을 인수하여 운반·저장·처리 및 처분하는 모든 활동이 아닌가.

2008년 3월 28일 공포된『방사성폐기물관리법』의 효력발생일이 2009년 1월 1일이고 아직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법 부칙에서 관리공단 설립준비를 법 공포일로 했다고 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을 공모하지 않고 특정지역에 두기로 한 것은 문제가 많고, 이에 이의를 다는 울진지역 일부 인사들의 요구는 일리가 있다.

어느 지역이나 원전발전시설이나 핵폐기장 같은 시설은 지역 주민들이 대체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이다. 울진지역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방폐장 시설을 두고 찬성파도 있을 수 있겠고, 반대파도 상당할 터에 공과(功過)는 그 후에 짚어볼 수 있다. 경주지역이 방폐장 유치에 성공하여 공공기관이 이전되고 정부로부터 많은 인센티브를 받아 지역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음도 헤아려볼만 하다.

신문에 난 “울진공항 승객들이 하루 50명 정도 밖에 안돼 취항을 원하는 회사가 없어 다른 용도로 변경을 한다”는 보도를 접하고서 가정법으로 한번 생각을 본다. 만약에 그 때에 울진군에서 방폐장 유치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여 주민의사를 물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리하여 주민들이 원하여 유치에 성공했다면 현재는 지역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까 하는 상상이다.

‘방폐장 유치조건으로 한수원 본사와 방폐장관리공단을 울진지역에 두는 것을 요구하여 성공하고, 나머지 울진지역 발전을 위한 특수전문대학이나 공공기관 한두 개를 유치한다고 가정해 보았을 때 그에 따른 관련 회사나 가족 등 인구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가 되어도 울진공항이 하루에 50명밖에 탑승객이 없으며 끝내 비행훈련장으로 변경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물론 가정(假定)이긴 해도 결과는 분명 다르리라 본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법을 상정(想定)하여 현재의 최적안(最適安)을 유추해내거나 이것을 빌미로 하여 지난 정책결정 문제의 꼬투리를 잡자는 뜻은 전혀 아니다. 바둑에도 복기(復碁)가 있는 것처럼 정책이나 시책의 잘되고 잘못됨을 가리고 유사한 정책 수립에 참고하기 위한 환류(還流 ; Feedback)과정은 필요로 한다.

언론에서는 울진공항 설치문제를 두고 정치권의 실세가 작용을 했고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했다면서 나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전국지역 중에서 가장 교통 오지로 남아 있는 지역에 공항을 세운다는 것은 지역발전 차원이나 교통오지 해소차원에서도 당연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다만 필자가 가정법에서 결과를 유추해보았듯이 방폐장이 유치되고 연계하여 한수원 본사나 방폐장관리공단의 설치 등 공공기관과 함께 한두개 특수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유치되는 등 실효성 있고 파급효과가 높은 연계 방안과 직결되었다면 울진공항이 천덕꾸러기 신세에 처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과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여건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업이나 정책의 집행 결과는 현재 상태에서 나타난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지만 울진공항 문제를 무조건 잘못된 정책이라고 몰고 갈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울진공항 시설을 어떻게 이용할까 하는 것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잘 판단하여 해결할 과제로 남아 있지만 비행기훈련원 등으로 변경한다는 정부방침에 울진군민들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중심축인 수도권과 도시정책에 우선하는 현실이고 보니 지방은‘울며 겨자먹기’라는 난감한 생각뿐이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 분명 아님에도 그곳까지 가려면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교통오지로 남아 있는 낙후지역 울진, 영덕지역을 두고 대한민국의 지역균형발전이나 교통망 정책을 잘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 일들이 다 꼬이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때는 낙후지역을 발전시키는 신기루로 등장했지만 이제는 정부 입장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된 울진공항이 지역주민들의 여망과는 180도 뒤틀어져 소음공해를 가져다줄 혐오시설로 변할 처지가 되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바라던 주민들의 마음은 오죽 씁쓸하겠으랴. 지역을 살리고 주민들이 원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묘안(妙案)이 어디 없을까?


저작권자 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