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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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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에서는 모든 존재현상은 음양(陰陽), 오행(五行/水, 木, 火, 土, 金), 기(氣)의 취산(聚散), 즉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데 따라 생겨나고 없어진다고 여긴다. 사람도 기의 모임으로 태어났다가 그 기가 흩어지는 현상이 죽음이다.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혼백(魂魄) 또한 음양의 기이므로, 시일이 지나면 흩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기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유교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는 내세관이 뚜렷하다. 죽음은 곧 다른 삶의 시작으로 종말이 아니며 전생의 업보에 따라 금생(今生)에 태어나서 다시 업을 짓고 죽으면 그 업과(業果)에 따라 내세가 열리지만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은 업이 아뢰야식(기억저장창고)에 저장되며, 이 저장된 업식(業識/행위의 집적물인 ‘업’이 인식작용의 주체인 ‘식“에 저장된 것)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람, 천상으로 윤회한다.
윤회론에 입각한 재생(再生)논리를 취하는 인도문화권의 화장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죽은 뒤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존재한다고 믿으며, 사후 에너지가 뼈로 상속된다고 믿었기에 장례의식이 매장이다.
명당은 뼈만 남는 곳을 지칭했고, 명당을 쓰면 후손이 발복(發福)한다고 여겼다. 화장은 남는 것이 없기에 조상과 후손의 연결은 끊어졌다고 본다. 즉, 제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논어 학이>제9장에, 신종추원(愼終追遠) 민덕귀후의(民德歸厚矣) “삶의 마감을 신중히 하고(장례의식)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제례),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동아시아 제례전통의 근원을 찾아볼 수가 있다.
또한,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기쁜 일이 있다”는 것도 조상숭배로 조상의 음덕(陰德)이 자손에게 미침을 나타낸다.
이렇듯 제사는 “떠나간 이를 추모하는 일”이기에, 음식을 차리는 것보다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자가 말했듯이, “늙은이들이 편안하게 여기고, 친구들이 믿음직스럽게 여기고, 젊은이들이 그리워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올바른 인생여정이 아닐까 싶다.
제사는 동아시아문화권의 매장풍습과 조상숭배라는 논리적 결합구조를 갖는다. 제사는 밤 문화이기에 돌아가신 날(忌日) 자시에 지내는 것이지, 전날 지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혹자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만 100% 작용할 뿐, 타인과의 관계나 사회적 약속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문화전통은 구성원간에 정해놓은 약속이기에 그 절차가 중요한 것이다.
제사의 ‘祭’를 파자(破字)하면, 고기육(肉)을 나타내는 육달월(月)과 또우(又) 그리고 볼시(示)로 되어 있다. 고기에 고기를 차리고 조상이 내려 본다는 의미다. 물론 육신이 없기에 촉식(觸食)으로 흠향(歆饗)을 한다.
제사는 육제(肉祭)가 중심이지만, 생활감정의 변화에 따라서 과일의 진설도 추가되는데, 그 중에서 “조율이시(棗栗梨柿)”에는 나름의 의미부여가 되어 있다.
대추(棗)는 암수한몸으로 꽃 하나에 열매 하나가 열리고 많이 달린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의미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한다. ‘씨’가 한 개인 통씨인 것은 절개를 뜻하고, 순수한 혈통과 후손의 번창을 기원한다.
대추의 붉은 색은 임금 시무복인 용포를 상징하고, 씨가 하나이며 열매에 비해 씨가 큰데, 이는 왕을 의미한다. 왕이나 성현이 될 후손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의미와 죽은 혼백을 왕처럼 모신다는 자손의 정성을 담고 있다.
나무를 길러낸 씨앗은 땅속에서 썩어 없어지지만, 밤(栗)은 땅속에서 씨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서 열매인 밤송이를 맺어야 밤이 썩는다. 밤처럼 자손이 멸(滅)하지 않고 대대손손 가문이 번창하기를 비는 뜻으로,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것과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의미한다.
위패나 신주를 밤나무로 만드는 이유도 그러하다. 또한 어린이가 성장할수록 부모는 밤의 가시처럼 차츰 억세었다가 자라면 이제는 품안에서 나가 살아라하며 밤송이처럼 쩍 벌려주어 독립된 생활을 시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밤은 한 송이에 세 개의 밤톨이 있으므로 삼정승을 뜻하고, 높은 벼슬을 하는 자손이 나오길 바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배(梨)는 겉이 황색인데,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상징한다. 민족의 긍지를 나타낸다. 배의 속살이 하얀 것은 백의민족에 빗대어 순수함과 밝음을 나타낸다. 또한 배의 속살처럼 깨끗하고 무병장수하라는 뜻도 있다. 배는 씨앗이 여섯 개이므로 육조판서 벼슬을 하는 자손이 나기를 바라는 의미도 있다.
감(柿)의 씨앗을 심으면 감나무가 나지 않고 작은 감모양의 고욤이 달리는 고욤나무가 나온다. 3년-5년에 기존의 감나무를 고욤나무에 접붙여야 그 다음 해부터 감이 열린다. ‘접을 붙인다’라는 것은 남녀의 결혼을 뜻하며, 아들이나 딸이 결혼해 자식을 낳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는 쉬운 것이 없듯이,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라 그 아픔을 딛고 선인의 예지를 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감이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감나무를 잘라보면 속에 검은 신이 없고, 감이 열린 나무는 검은 신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두고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그만큼 속이 상했다하여, 부모를 생각하며 제사상에 놓는다. 감은 씨앗이 여덟 개여서 팔도관찰사를 의미하며, 그처럼 훌륭한 자손이 나오라는 뜻도 있다.
끝으로, 살구와 복숭아처럼 껍질에 털이 있는 과일은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이는 정갈함과 경건함에 어긋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