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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노촌 이약동 청백리상’ 시상식

이남주 기자 입력 2023.11.16 13:08 수정 2023.11.17 13:08

이약동은 청렴했을 뿐만 아니라 인의(仁義)를 갖춘 공직자였다.

깔끔하게 떠나는 공직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약동은 청렴했을 뿐만 아니라 인의(仁義)를 갖춘 공직자였고, 애민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오늘날까지 고향 김천을 빛내고 있다. ‘제6회 노촌 이약동 청백리상’ 시상식이 16일, 양천동 하로서원에서 이약동 선생을 기리기 위해 개최됐다.


6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시상식은 김천문화원이 주관하고 김천시와 노촌 기념 사업회가 후원했으며, 이철원 벽진이씨평정공파 종중회장을 비롯해 선생의 후손들과 수상자 가족, 동료직원, 이명기 시의회 의장, 이우청, 최병근, 도의원, 김석조 시의원, 이기양 사)노촌기념사업회 이사장(문화원장), 이부화 대한노인회 김천시지회장, 이광준 김산향교 전교, 정택 개령향교 전교 등이 참석했다.


올해 수상자는 장수원 김천시청(안전재난과), 하태훈 (김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남상협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감사실) 으로, 김천문화원에서 엄정하게 심사해 선정했다.


수상자들에게는 청백리 표창패와 함께 노촌 이약동 선생이 제주 목사로 3여 년간 청백리 정신을 몸소 실천하다 이임할 때 말채찍조차도 관물이라 하여 관아 앞 바위에 두고 왔다 하여 괘변암 이라 이름하고 이후 청백리의 상징이 된 말채찍을 부상으로 수여하고 있으며, 이약동 선생이 제주 목사로 재임할 때 선정과 청렴의 증표로 남겨 놓은 제주도 관련 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이기양 문화원장은 “이약동 선생은 46년이라는 오랜 관직 생활을 청렴결백으로 일관하시어 조선시대 최고의 명예인 청백리에 오른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역사 인물입니다. 이러한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기리고 모범적인 공직자를 발굴하여 공직사회에 청렴 문화를 확산하자는 취지로 청백리상이 제정되어 오늘 시상식을 개최하게 되었다.”며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말을 하였다.


이철원 벽진이씨평정공파 종중회장은 인사말에서 “오늘 개최되는 청백리상 시상식은 청렴결백으로 일관하신 노촌 선조의 청백리정신을 선양하여 일생에 걸쳐 추구하신 맑고 깨끗한 사회가 이룩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고 전했다.



이약동 선생은 1478년에 경주부윤, 1482년에 호조 참판, 1486년에 전라도 관찰사를 하다가 1487년에 한성부 좌윤으로 근무했다. 이어서 1487년 12월에 이조참판이 되었고, 1489년에 개성유수를 하다가 1491년에 사직하고 말년에 김천의 고향집에서 여생을 보냈는데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훈계 시를 남겼다.

살림이 가난하여 나누어 줄 것은 없고 (가빈무물득지분)家貧無物得支分
있는 것은 오직 쪽박과 낡은 질그릇 뿐 (유유단표노와분)惟有簞瓢盧瓦盆
주옥이 가득해도 곧 없어 질 수 있으니 (주옥만영수수산)珠玉滿籝 隨手散
후손들에게 청백을 당부하는 것만 못하네 (불여청백부아손)不如淸白付兒孫
 


1493년에 이약동이 별세하자 조정은 조회를 정지하고 평정(平靖)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 ‘일을 맡음에 법도가 있었고(平), 온유한 덕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잘 끝마쳤다.(靖)’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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