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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시론(時論) - “김천방언사전” 발간의 의의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1.18 09:06 수정 2024.01.19 09:06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국어교육)


김천시가 “김천 방언사전”을 내어놓았다. 그만큼 이 사전의 콘텐츠 개발에 대한 공적 소임과 편찬 과정에 대한 신뢰감을 표방한다는 뜻으로 읽혀서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이번 사례가 지역의 의미 있는 지식 콘텐츠를 연구‧개발하고 출판하여 소통하는 데에 지자체가 주체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본다. ‘김천 문화’와 ‘김천 연구’를 한 차원 높게 고양하는 모범 전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책을 촘촘히 들추어 보았다. 우선 사전의 체제와 내용이 사전다운 품격과 내적 체계를 구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상당한 양적 풍부함을 지니고 있다. 서문과 일러두기는 사전의 관습에 충실하고 상세한 편이다. 이 “김천 방언사전”의 해제(解題) 격인 ‘김천 지역의 인문지리적 특성과 방언 특성’은 김천 방언 전체에 대한, 학계의 정리된 배경적 지식(schema)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본편에 해당하는 어휘 편, 문법 형태소 편, 관용어 편의 구성과 서술 체재도 무리 없이 깔끔한 편이다.

이 사전이 일반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유용하게 다가가도록, 지나친 학문적 기술(記述)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는 점도 눈에 뜨인다. 그렇다고 학문적 의의가 감소하지는 않는다. 여기 선정된 4,400여 개의 표제어 자체가 학문적으로 유용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 방언 분야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집필을 맡아서 수행한 경북대학교 한국어문화원의 학문적 역량과 연구 수행의 전문성을 느낄 수 있다.

과거 다른 지역에서 민간 연구자들이 임의로 출판하는 ‘지역 말 사전’의 허술한 사례를 종종 보아 왔던 나로서는 이번 사전 작업에 대한 조바심과 더불어 기대감을 높게 가졌었다. 다행히도 “김천 방언사전”이 이처럼 신뢰할 수 있는 ‘반듯한 지식 콘텐츠’로 세상에 나온 것은, 출향인으로서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 온 필자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국내‧외 학계에도 유익한 자료로 작용할 것이다. 시민들에게 뿌듯한 문화적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고 하겠다. 이런 방언사전을 갖지 못한 기초자치단체 지역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김천 방언사전”을 앞에 두고 생각해 보니, 오랜 세월 이 일의 바탕을 마련해 온 분들의 노고가 짚어졌다. 사전에 수록할 수많은 김천 방언의 원자료를 꾸준히 수집하여 정리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김천 지역 방언의 언어적 문화적 가치를 일찍이 발견하고, 오랜 세월 김천 방언을 수집하고 탐구하며 정리해 온, 겸손한 연구자 이종개 선생의 선각자적 노력이 돋보인다. 수많은 연구 조사원을 동원하여 김천 전 지역을 일정한 조사 준칙 아래 수년간 조사하고 채록해야 하는 과정을 이분이 감당하신 것이다(뒷날 민경탁 시인 가담). 이렇게 긴 작업의 시간이 없었다면 사전 발간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이 펼쳐지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천말의 살아 있는 용례들을 섬세한 언어적 감수성으로 소개하는 데 공력을 보태며 사전 발간의 촉매 역할을 한 민경탁 시인의 수고도 다시금 헤아리게 된다.

표준말의 언어 규범적 정당성을 강조한 나머지 방언을 홀대하는 인식은 사라지고 있다. 방언도 표준어와 마찬가지로 국어를 풍요롭게 하는 자산이다. 이런 국어관(國語觀)은 이미 국가가 고시하는 학교 교육과정에도 반영된 지 오래다. 방언은 지역 주민의 삶의 전통과 역사에(서) 스며들어(생성되어), 그들 지역의 생태에 연계되는 사유(思惟)와 그들 지역의 생활 정서를 오묘한 뉘앙스로 담아내는, 살아 있는 언어이다. 그래서 방언의 보존과 활용은 ‘한국어의 총체’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과업이다. 어휘는 물론이고, 발음과 형태, 발화(發話)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방언의 실현을 통해서 한국어는 확장되고 심화한다. 이는 표준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김천 방언사전” 발간은 전체 한국어의 지경(地境)을 확장하는 데 한몫을 하였다. 학문적으로도 그러하고 언어 운용의 실제 국면으로도 그러하다.


이번 “김천 방언사전”은 이제부터 김천 방언의 문화적 가치와 쓰임을 넓혀 나가는 첫 징검돌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사전은 이제 ‘시작의 지점’을 뜻한다. 아직도 찾아내야 할 김천말의 원자료들은 허다히 많다. 이번에도 400개 정도의 김천말 어휘를 추가로 사정(査定)해 놓고도 편찬 일정에 쫓겨 최종 편집에 포함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 말고도 수록할 가치를 잠재적으로 보유한 김천말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싶다.

그러므로 이 사전은 앞으로 꾸준히 진화하면서 개정에 재개정을 거듭해 가는 것이 마땅하다. 김천 방언을 포함하여 모든 언어 현상이란 그 변화가 매우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전이 좋은 사전이 되려면, 김천 방언의 역동성을 꾸준히 담아내면서 의미 있게 진화하는 사전이라야 할 것이다. 이 사전이 앞으로 진화‧발전하는 과정에서 좀 더 정교하게 보강해 가기를 바라는 점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김천 방언사전”이 이렇듯 물리적 형태인 책으로 담고 있는 콘텐츠 일체는 디지털 콘텐츠로도 변용하여 그 쓰임과 진화를 적극적으로 도모하기를 바란다. 이 콘텐츠를 어플로 개발하여 시민 일반이 휴대전화에 깔아서 수시로 쓸 수 있게 하면 어떨까. 또 이 콘텐츠를 인터넷 공간에 펼쳐두고 김천 방언의 표제어나 용례를 관심 있는 김천 시민 누구라도 올릴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잘못된 오류는 누구라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마치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을 시민 지성 집단이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해 볼 것을 권해 본다. 명실상부한 시민의 사전으로 진화하기 위해서 ‘김천 방언사전 운영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해 보았으면 한다.

둘째, 방언이 사용된 용례를 더 풍부하게 등재해 주기를 바란다. 현재는 표제어마다 한 개의 용례를 제공했는데, 해당 방언이 실제로 구사되는 맥락에 따라 용례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전형적 김천인의 발화로부터 방언 구사를 녹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김천 출신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서 방언사용 용례를 인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관용어 편에 모두 32개의 표제어가 있는데, 이는 다소 협소한 느낌을 준다. 관용어 개념을 넓게 잡아서, 이를테면 김천 지역 속신(俗信)의 언어들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해서 표제어 항목이 꾸준히 늘어나도록 발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어휘나 문법 형태소 범주의 방언이 비교적 정태적(靜態的)인 방언이라면, 실제로 김천말이 구사되는 발화 차원의 대화 장면 방언들, 즉 동태적(動態的) 방언을 더 적극적으로 기획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사전 체제에서는 이런 범주를 따로 설정하지 않고, 어휘편의 표제어 용례들을 통해서 김천 사람이 보여 주는 김천 말의 대화적 구현 맥락을 부분적으로 상상해 보게 하는 데서 그친다. 대화자가 한 번씩 주고받는 대화 언어를 표제어 단위로 삼음으로써 방언사전의 실제적 효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지역의 방언 현상은 어찌 보면 ‘사라질 수 있는 언어’의 현상이기도 하다. 방언을 존재하게 했던 생태가 달라진 탓도 있고, 방언의 고유성을 압도하는 지역어 간의 융합과 변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김천 방언 중에도 한 세대 뒤에는 남아 있기 어려운 말들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김천의 언중(言衆)들에게서 쓰임을 받지 못하는 방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전에 표지화(標識化)하여 드러내어 주는 방식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김천말에 뛰어난 감수성을 가진 김천 작가들은 창작 활동을 통하여 김천 방언의 재발견 내지는 부활을 꾀해야 할 것이다. 자기 고향 평안남, 북도 방언을 민족어의 수준으로 확장한 백석 시인, 전라도 방언을 국민문화어 수준으로 승화시킨 김영랑 시인 등을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언에 의하면 이번에 발행한 “김천 방언사전”은 수많은 사람과 기관‧단체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 인쇄한 물량이 금방 다하여 곧 제2쇄를 찍는다고 한다. 김천과 김천의 언어, 그리고 김천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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