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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수필

수필공원 - 이장님 우리 이성규 이장님

김희섭 기자 입력 2024.07.25 12:40 수정 2024.07.25 12:40

김영호 / 화양연화 대표 / 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어제 아침에 방송한 것처럼 오늘은 마을 주변과 농로의 제초작업을 하는 날입니다. 예초기가 있는 분들은 예초기를 가져오시고 그렇지 않으면 빗자루나 괭이를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포농협 조합원 중에서 아직도 비옷을 가져가지 않으신 분들도 지금 나오셔서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오전 5시에 김천시 아포읍 대신3리(자연 부락명 시내이) 마을회관에서 방송한 내용이 마을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같은 내용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두 번을 방송했다. 3년째 우리 마을의 이장으로 동분서주하시는 이성규 이장님의 방송이다. 방송은 마을의 공동 작업이나 멸치나 소금 등의 식자재 신청과 퇴비나 직불금 신청 등이 있을 때마다 한다.

예전에 영호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마을에 확성기가 없었다. 당시의 동장을 도와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마을 사람들은 ‘하심’이라고 불렀다. 하심이 확성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전체 안내를 할 일이 있으면 우리나라의 지도같이 생긴 마을의 동해안 쪽에 해당하는 산 곳곳에서 큰소리로 “동민 여러분…….”으로 목청을 높였다. 목청을 높인 곳은 지금의 청진, 원산, 강릉, 포항, 부산 등에 해당하는 산언저리였던 것 같다. 1995년 1월 1일에 김천시와 금릉군이 김천시로 통합되었다. 그때부터 동장 명칭이 이장으로 바뀌었다. 그해 3월 1일에 아포면이 아포읍이 되면서 김천시 아포읍 대신 3리가 되었다.

정년퇴직을 하기 몇 년 전부터 30여 년이 된 자두나무를 베고 땅심을 더하기 위해 소거름을 넣었다. 어떤 작물을 재배할까 고민이 많았다. 기존의 자두나무는 제외하고 복숭아와 포도를 염두에 두었다. 그때만 해도 샤인머스켓의 가격은 좋았다. 결국, 포도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심기로 했다. 아내는 전부 포도로 하기를 원했지만, 복숭아를 포도의 배 정도의 평수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포도는 온전히 이장님을 믿고 한 것이다.

이장님은 친구의 형님이다. 포도 농사는 인근 지역에서 최고의 권위자이다. 샤인머스켓 농사를 배우기 위해서 하루에도 많은 분이 이장님의 농장을 찾곤 한다. 나 같으면 귀찮아할 법도 한데 이장님은 한 분 한 분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하신다. 요즘은 유튜브가 활성화되어 있기는 해도 직접 밭에서 포도나무를 보면서 배우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포도 농사의 과정은 만만치가 않았다. 비가림 하우스 시설은 이장님이 잘 아는 이웃 마을의 후배가 꼼꼼하게 설치했다. 묘목도 이장님의 소개로 접목한 110주를 샀다. 소거름을 넣은 땅에 석회를 넣은 것도 이장님의 조언이다. 묘목심기, 물주기, 순따기, 농약치기 등등 하나에서 열까지 이장님에게 묻는다. 그때마다 반거충이 농사꾼인 영호에게 차근차근 잘 가르쳐 주신다.

올해 장마 기간인 7월 9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렸다. 7월 10일 아침에 확인하니 화양연화 농장의 포도에는 별 피해가 없었다. 같은 농장의 금봉복숭아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는지 가지가 부러지고 처지는 것이 많았다. 더 심각한 것은 무, 배추, 고추 등의 김가네맛꼬방의 산실인 밭 가장자리가 폭우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사람이나 경운기,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이번 폭우에 아포읍의 마을마다 둑이 터지는 등의 피해가 커서 행정인력이 피해가 난 곳곳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아포읍에서는 둑 붕괴 등의 심각한 피해 외에는 각 마을의 이장님들 책임하에 선복구를 한 후에 읍에서 후정산의 묘책을 내놓았다. 이장님의 도움으로 포동봉지를 싸는 날인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오전에 마을 형님의 포크레인으로 농로에 흘러내린 토사를 정리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이장님의 포도농장과 영호의 화양연화농장은 농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본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는다. 새참 시간이 되면 큰소리로 “형님, 좀 쉬었다 하십시다.” 한다. 그러면 이장님 밭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영호의 농막에서 커피를 마신다. 더운 여름에는 냉동고에 가득 넣어둔 얼음과자도 제격이다. 쉬는 시간에는 농사, 마을일, 세상 사는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일어서면 다시 일이 시작된다.

이장의 임기는 3년인데 연임 제한이 없다, 어떤 농어촌에서는 20년 이상 이장을 하는 분들도 많다. 이장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언론에서 보곤 한다. 우리 마을의 이성규 이장님은 겸손하면서도 민주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아포읍이나 아포농협에서 협조를 구하는 일의 대부분은 이장님 몫이다. 아포읍의 이장 회의를 마치면 서류뭉치가 양손 가득하다. 마을의 대소사에 솔선수범하는 우리 마을의 이성규 이장님, 함께 살아가는 고향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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