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출신 이복희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바닥을 읽는 사람』(현대시학)을 펴냈다. 첫 시집 『오래된 거미집』이후 한층 깊어진 시세계를 보여주는 이번 시집은 자연과 사물, 여행지와 도시의 풍경 속에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존재들의 삶과 시간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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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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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희 시의 바탕에는 고향 김천의 자연에서 익힌 감각이 깊숙이 자리한다. 돌과 물, 나무와 새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을 단순한 서정의 배경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해석하기보다 돌은 돌대로, 새는 새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살아가는 고유한 시간과 생명의 질서를 발견한다.
표제작의 의미를 응축하고 있는 「돌의 지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굴착기 삽날에 모습을 드러낸 모래톱의 돌에서 시인은 오랜 물살을 견디며 깎이고 둥글어진 생의 흔적을 읽는다. 마침내 맨발에 닿은 돌의 감각을 통해 ‘돌의 지문’을 발견한다. 사람이 돌을 바라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 또한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새기는 순간이다.
문학평론가 박덕규는 해설 「옆걸음도 뒷걸음도 없이」에서 이복희 시의 특징을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사물 자체의 가치와 자생성·자율성을 발견하는 생태적 관점에서 찾는다. 「오목눈이집」에서는 새가 스스로 둥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오래된 지혜를 읽고,「문래동의 봄」에서는 철공소와 낡은 공장이 뒤섞인 산업 공간에서도 생명의 리듬을 발견한다.
시인의 시선은 김천에서 출발해 완도와 순천만, 고성, 서울 문래동을 지나 미국 캘리포니아와 헝가리 다뉴브강까지 넓어진다. 그러나 여행의 명소나 이국적인 풍경을 앞세우지 않는다. 「다뉴브강의 신발들」에서는 강변에 놓인 낡은 신발들을 통해 전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을 읽는다. 자연과 도시,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면서도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한결같이 낮은 자리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은 이복희의 시에 대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낮은 곳에 오래 시선을 둔다”고 평했다. 모래톱의 돌과 뒷골목의 길고양이, 가시 돋친 나무와 낡은 신발 등이 그의 시에서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증언하며, 그곳에는 ‘버텨온 것들의 체온’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바닥’의 의미다. 바닥은 가장 낮은 곳이지만 수많은 발이 지나고 물이 흐르며 시간이 쌓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복희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바닥에 몸을 낮추고 오래된 흔적과 목소리를 읽어내는 일이다.
김천에서 태어나 자연과 삶의 원형을 몸에 익힌 시인은 이제 고향에서 시작된 시선을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의 중심에는 여전히 돌과 나무, 물과 바람처럼 소박하고 낮은 존재들이 자리한다. 김천의 자연에서 시작된 한 시인의 시선이 세계의 낮은 곳을 향해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바닥을 읽는 사람』은 지역 문단에서도 주목해볼 만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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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희 시인은 첫 시집 『오래된 거미집』과 수필집 『내성천에는 은어도 별이 된다』등을 펴냈다. 2010년 《문학시대》 수필 신인상, 2022년 계간 《시에》 시 신인상을 받았으며, 최근에도《시에》, 《불교와문학》, 《사이펀》, 《시와산문》, 《디카문학》, 《시하늘》, 《포에트리슬램 ABBA》등 여러 문예지에 잇달아 작품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