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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김천신문 |
뜨게부부 이야기
내 가난은 에멀무지 뜨개질 하고 있다
도안 없는 가시버시 그 실눈 크게 뜨고
허공에 색실을 놓아 곰비임비 재촉한다
이랑뜨기 몰래하다 코 놓친 지난날이
너설을 빠져나와 휘감아 본 길이지만
마음은 삐뚤삐뚤한 아지랑이 길이 된다
어영부영 또 하루가 저녁으로 흘러가고
양지에 펼쳐놓은 눅눅해진 저 그리움들
오늘도 발바닥에 밟힌 티눈을 뽑아낸다
*뜨게 부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남녀.
*너설: 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 나온 곳.
양파의 시
날마다 집에 갇혀 봄날을 기다렸던
한겨울 불면의 밤 스스로 걸어 나와
창문에 드리워진 슬픔
입김으로 닦는다
긴긴날 시린 생각 껍질을 벗겨내고
반짝이며 날아온 햇살의 지문으로
꽉 막힌 울대를 만져
닫힌 말문을 연다
얼룩진 그리움들 눈먼 시간도 지워
백지로 떠오르는 욕망의 흰 속살에
몸으로 움켜잡은 먼 길
바람이 읽고 있다
심사를 맡은 이우걸 시조시인은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 돋보여’ 제목의 심사평을 통해 “감각적 이미지를 구사해내는 점에서, 일상적 경험을 자연스레 시화해내는 능력면에서, 대상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점에서, 난해한 이미지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한 “곽길선의 작품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천착,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신선한 우리시대 삶의 풍경을 잘 삼투시키고 있어 그런 미덕들이 개성적이고 실험적으로 보였다”며 “곽길선 시조시인의 ‘양파의 詩’를 더해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고 밝혔다.
곽길선 시조시인은 ‘시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당선소감을 통해 “밤이면 자주 시를 쓰는 꿈을 길게 꾸었다”고 회상하며 “어릴 적 글쓰기를 좋아했던 저의 꿈은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꿈을 잊고 산 몇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운명처럼 시조를 만났고 그 막연했던 꿈이 다시 열정으로 불타올랐다”며 “시를 공부하면서 날마다 욕심을 뜨겁게 담금질했으나 그동안의 신춘문예 낙선이 매우 쓰라렸지만, 그 좌절의 시간이 저를 더욱 튼튼하면서도 강하게 키운 힘이 됐다”고 기뻐했다. 또한 “시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저의 운명이 됐다”고 덧붙였다.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곽길선 시조시인은 중앙시조백일장 입선, 제21회 신라문학대상 시조부문 당선 등의 수상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