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적으로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016년 병신년(丙申年)이 저물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정유년은 천간(天干)이 정(丁)이고 지지(地支)로 따지면 34번째 해인데 10간 중 정(丁)은 붉은색을 뜻하기 때문에 금년은 닭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용맹하다고 할 수 있는 붉은 닭의 해에 해당하니 자못 기대되는 바가 크다.
최근 AI로 인해 때 아닌 눈총을 받고 있는 신세이기는 하나 닭은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여는 빛의 전령이자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우리 조상들도 일찍이 닭을 가까이 두고 키웠을 뿐만 아니라 고전문학과 회화작품에도 곧잘 등장하는 친근한 동물이기도 하다.
또한 풍수적으로 닭의 힘찬 울음소리는 액운과 음기를 쫓고 길상(吉祥)과 양기를 불러오는 상서(祥瑞)로움을 지녔다하여 예부터 지명이나 마을 터를 잡을 때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김천지역에도 닭과 관련된 지명이나 풍수지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닭의 해를 맞아 재미삼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개령면 동부리 감문산자락에 위치한 계림사(鷄林寺)에는 절을 창건하고 절 이름에 닭을 뜻하는 계(鷄)자가 들어가게 된 흥미로운 사연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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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림사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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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사는 직지사 창건주인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서기 418년 창건했는데 ‘감주계림사개건기(甘州鷄林寺改建記)’와 ‘계림사사적기(鷄林寺寺蹟記)’에 따르면 감문산의 살상(殺傷) 기운을 제압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때 닭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풍수지리로 볼 때 감문산은 호랑이가 누워있는 와호형(臥虎形)의 지세로 그 중 한 봉우리인 호두산(虎頭山)은 호랑이의 머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 호랑이의 머리가 바라보는 방향이 하필이면 감천을 넘어 함골마을(아포읍 대신리)인지라 이 마을사람들이 호랑이의 살기(殺氣)에 눌려 일 년에도 몇 명씩 멀쩡한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직지사를 짓기 위해 선산에서 김천을 내왕하던 아도화상이 개령을 지나다가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문산을 둘러본 후 호랑이의 살기를 누르기위해 호랑이의 심장에 해당하는 지점에 절을 짓고 밤을 상징하는 호랑이와 상극으로서 낮을 상징하는 닭을 절에 기르고 절 이름마저도 닭이 무리를 지어 산다는 의미인 닭계(鷄)자에 수풀림(林)자를 써서 계림사(鷄林寺)라 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부족해 아도화상은 호랑이를 함정에 빠지게 한다는 의미로 원래 한골이었던 마을이름을 빠질함(陷)자를 써는 함골(陷谷)로 고쳤다는 것인데 이후부터 사람이 죽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니 신비스러울 따름이다.
아포읍 송천리 금계(金鷄)마을에 얽힌 닭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금계마을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전형적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로 알려져 왔으며 금계라는 마을이름도 이같은 풍수지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조상들은 예부터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에 적합한 마을 입지처로서 금계포란형을 선호했는데 이것은 닭이 근면과 지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금계마을은 마을뒷산이 닭이고 현재 마을의 위치한 터가 알에 해당하기 때문에 장차 알이 부화하듯이 후손들이 번창하고 재복이 넘쳐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또한 닭이 알을 품을 때 앞이 개방되면 좋지 않다하여 4백여년 전에 주민들이 공동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는데 지금도 앞숲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오고 있으니 명당을 지켜내기 위한 주민들의 정성과 노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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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마을 앞숲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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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면 관기리로 속하는 호미(虎尾)마을도 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호미마을 뒷산은 풍수지리로 볼 때 호랑이가 누워있는 와호형(臥虎形)인데 마을이 자리 잡은 위치가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지라 마을이름을 호랑이호(虎)자에 꼬리미(尾)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이 마을에서는 예부터 호랑이와 상극인 달을 키우지 않았는데 이것은 닭을 키우게 되면 야행성인 호랑이의 기운과 새벽을 알리는 닭의 기운이 충돌해 마을에 불운이 올수 있다는 염려에 따른 것으로 “호미마을에서는 닭을 금지한다”라는 뜻의 “호미금계(虎尾禁鷄)”가 마을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지금은 세태가 변해 암묵적으로 통닭도 배달시켜먹곤 한다지만 수십년전 갓 시집온 새댁이 닭고기가 먹고 싶어 어른들 몰래 닭을 사다가 잡아먹으려했는데 새벽에 “꼬끼오”하고 우는 바람에 쫒겨날뻔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순박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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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마을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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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최첨단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 이 같은 전설들은 고루한 옛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겠으나 오직 후손들의 안녕과 복된 삶을 소망한 우리네 조상들의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만으로도 더없이 고맙고 따뜻하기만 하다.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