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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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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시집 ‘총잡이’(애지)가 발간됐다. 어모면 다남리 출신으로 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문단 데뷔한 이동호 시인의 ‘조용한 가족’에 이은 두 번째 시집 ‘총잡이’에는 ‘사물함’, ‘우체국, 간다’, ‘모퉁이 고물상’ 등 52편의 시가 3부로 나눠 편집됐다.
며칠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권총만 종일 만지작거린다/ 몸속에 총알이 가득 찰 때마다 몸이 근질거리는 것은/ 내가 타고난 총잡이이기 때문이다/ 난사(亂射)는 하수나 하는 짓이다/…<중략>…/ 사타구니에 총을 차고 수시로 은행문을 드나들겠지만,/ 총을 한번 폼나게 제대로 빼어든 적 있는가/ 텅 빈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총알이 박힌 듯 아프게 은행문을 돌아서 나왔던/ 불쌍한 당신이나 나나,/ 축 늘어진 총구를 세워 달마다 여자 몸속의/ 둥근 표적을 향해 무수히 연습사격을 한들,/ 총알낭비 아니겠는가
표제 시 ‘총잡이’ 일부분이다.
“착상의 기발함과 재미있는 전개가 돋보이며 다양한 주제를 잘 내면화해 시적 긴장을 살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동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정밀한 시세계를 보여준다.
“여물지 않은 몸으로 고추밭을 지나가기가 부끄럽다./ 고추는 저렇게 자연스럽게 붉은데/ 나는 아직 파랗다/ 나는 언제쯤 저 고추처럼 붉게 잘 익어/ 풍성하게 수확될까// 새 한 마리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노동요를 뚝 꺾어 바닥에 던지고는 날아간다/ 여자들은 쪼그려 앉아 산의 사타구니 아래/ 천연히 손을 집어넣고 여전히 바쁜 손놀림이다/ 나는 머리끝까지 노을을 뒤집어쓰고는/ 얼른 밭두렁을 지나간다// 내놓고 다녀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내 청춘이 너무 부끄럽다”
이동호의 시인의 말 전문이다.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이동호 시의 매력은 디스토피아에 근접한 세속도시의 출구 없는 삶과 황폐한 느낌을 특유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데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표4글을 통해 정익진 시인은 “드라이한 묘사가 압권이지만 그 속엔 서러움이 소용돌이치고 연민의 시선 가득하다”고 했으며 김재근 시인 역시 “조용한 가족의 가장이 총을 꺼냈다. 그가 겨눈 곳이 비록 화장실 변기통이거나 텔레비전 속이었지만 그의 진정한 표적은 삶의 무기력에 저항하는 자신일지 모른다”고 했다.
2008년 대산창작지원금을 받고 같은 해 교단문예상을 수상한 이동호 시인은 현재 부산 신라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147쪽 분량의 이동호 시집 ‘총잡이’ 책값은 1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