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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 종합

'분장고 방획토'우 범하지 않길

홍길동 기자 입력 2010.07.29 10:24 수정 2008.10.15 09:35

쌀직불금,"국민 납득하는 객관적 처리결과 내놔야"

불안한 경제지표 및 경기 구도로 가뜩이나 국민들의 심사가 어수선한데 '쌀 직불금' 횡령 사태란 느닷없는 돌출 사태가 국민불쾌지수를 가중시키고 있다. 쌀 직불금(=쌀 소득보전직불금)이란 '쌀값하락으로 부터 농업인의 소득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당해 연도 쌀값과 기준가격 차이를 85% 보전해 주는 제도'다. 1 ha당 70만원을 고정 지급해 주고 나머진 변동직불금으로 보전해 주는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순수 농민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농사도 짓지 않는 소위 '가라 농민', 것도 무려 28만여명이 법의 맹점을 이용해 변칙적으로 이 쌀 직불금을 타간 것이다. 이들 '가라 농민'은 비료구매나 농협수매 실적이 전무한 비경작자들이다. 이들 '양심 불량 가라 농민'들이 눈먼 돈이라 생각하고 챙겨간 돈만 해도 무려 1683억원이라 한다. 감사원이 공개한 '2006년 쌀 소득보전 등 직불제 운영 실태' 자료에 따르면 이 '가라 농민' 대열엔 현재 의혹을 받고 있는 보건복지부 이봉화 차관 등 공직자를 비롯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공기업 종사자, 금융계, 회사원 등이 대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이 차관 경우 쌀 직불금 수령 포기 신청을 하면서 팩스로 서명도 없는 신청서를 보내는 등 허위로 쌀 직불금 포기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와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민주당, 민노당 의원들이 최근 서울 서초구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구청 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차관은 지난 6일 전화로 쌀 직불금 포기 의사를 밝힌 뒤 팩스로 주소지만 적힌 신청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차관은 지난 6일 한 언론사의 취재가 시작되자 쌀 직불금을 포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독기관인 감사원 조차도 이 자료를 2년여나 늦게 공개해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같은 공무원이라 해서 덮어주고 가려줬단 얘기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도 없진 않지만 대체 썩어도 이렇게 까지 썩을 수 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사회전반의 중심 가치지표가 실종되다 보니 "어찌해도 잘살면 된다"는 포괄적 '도덕 불감증'이 계층을 가리지 않고 현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 같아 우려를 떠나 절망감까지 엄습해 온다. 정치권이 현재 이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2년전이면 현재의 여.야가 뒤바뀐 상황인데 고질적인 사후약방문식 행태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후의 처리 향배에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우선 공직자, 공무원하면 현 세태에선 안정적 직업군에 속한다. 그런데 법을 누구보다 잘아는 이들이 솔선수범은 차지하고 라도 공무원 신분으로 나랏돈을 변칙으로 챙기고 자기 잇속을 채웠다는 것은 어떤 변명도 따를 수 없는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신뢰는 이미 바닥을 쳤지만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엄정 징계, 국고환수 등의 적절한 조치가 뒤따를 경우 최소한 국민이 납득하면서 차후의 여지를 남길 순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영원히 신뢰를 잃을 수 있는 개연성이 깔려 있다. 특히 모범이 되야 할 고위 공직자 경우는 더욱 더 엄정한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번일에 연루된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과 공기업, 금융계 종사자 등 소위 '돈좀 버는 이'들 조차 눈먼 나랏돈을 서로 먹기 위해 달려 들었다는 것은 이 사회의 도덕적 해이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한 사례라 볼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들에겐 무관한 먼 나라 얘기로 '자신,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심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렴'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감사원은 이번 사태로 전 국민적 신뢰에 치명상을 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2년전에 이미 이 사실을 알았던 바 왜 그 결과를 덮어놓고 이제와 공개를 한단 말인가. 불법사실을 알고도 감사원이 '권고'에 그치고 정작 불법 관련 공무원들에 대해 사후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감사원은 차후 이에 대해 책임있는 명확한 답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이 차관의 연루 진상 규명을 비롯 노무현 정부나 현 정권의 관련 비중을 따지는 무책임한 공떠넘기기식 책임공방 행태로는 국민신뢰를 더욱 잃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회는 아직 있다. 우선 이 차관은 사퇴해야 하며 정부와 정치권 전반은 모든 국민이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결과를 도출해서 가시화해야 할 것이다.

분장고 방획토(奔獐顧 放獲兎 도망가는 노루 돌아보다 잡은 토끼 놓친다)란 말이 있다. '사소한 일을 보고서 큰 일을 추리해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차관의 우선 사퇴란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얘기로 정부.정치권이 이번 사태에 임하는 첫 의지의 가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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