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김창겸 교수가 ‘신라문화’ 60호(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2022)에 게재한 것을 저자와 합의에 의하여.각주와 참고문헌 등은 생략하고 재편집하여 수록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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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두 글자를 니(내)로 읽는다고 해도 석탑기의 해석과 내용 이해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이유는 석탑기에는 신라시대 이두문이 사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4행의 ‘군니’와 5행의 ‘니(내)’에 대한 해석이다. 게다가 한국 자료에서는 ‘군니’와 ‘니(내)’의 대한 다른 사례가 없다.
4행의 조문황태후군니에서 조문황태후군니인가, 아니면 ‘조문황태후군 니’ 또는 ‘조문황태후 군니’인가 하는 것이다. 군과 니(내)를 모두 존칭접미사로 볼 것인가? 또는 군은 존칭접미사이고, 니(내)는 일반명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군과 니(내)를 모두 일반명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경신대왕니’에서 ‘니(내)’를 존칭접미사로 보느냐? 일반명사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자전에서 군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의미가 서술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천자제왕에 대한 칭호, 또 천자제왕의 아내에 대한 칭호라고도 하였다. 또 니(내)는 유모와 어머니로 해석한 것이 있다. 이에 따라 니(내)를 유모로 해석한다면 석탑기에서는 누구의 니(내)인가 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기존 연구자들이 이 문구를 해석한 견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점패방지진(鮎貝房之進)은 ‘군’을 「개선사석등기」의 “경문대와주 문의황후주 대랑주”에서 ‘주’자와 방언 ‘님’경칭을 더한 것으로 ‘굼’인데 지금은 없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니(내)’는 글자 그대로 ‘젖어머니(乳母)’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홍기문 또한 주가 ‘님’의 뜻으로 쓰이듯이, 군도 ‘님’의 뜻으로 쓰인 것이라고 하고, 니(내)는 그 음이 ‘내’로서 여자의 칭호를 나타내는 ‘-네’와 같은 것이라고 하고, 현대어에서는 여인 일반에 쓰이지만 고대에는 존경의 뜻으로 쓰인 것이라 하였다.
또 안병희는 군에 대하여 황태후나 부인 뒤에 쓰인 접미사로서 존칭의 접미사 ‘님’의 표기인 주와 같은 용법으로 추정된다고 하였고, ‘니’는 유모를 뜻하는 한자이지만 ‘내’음을 차용하여 여성을 지칭하는 명사에 연결된 존칭접미사로 해석하였다. 다시 말해 ‘남편이름’에 ‘내(네)’를 합친 것과 같이 남편의 이름을 대신 사용하여 아내를 나타냈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병삼도 “군은 황태후나 부인의 뒤에 쓰인 접미사로 ‘-님’의 표기인 ‘주’와 같은 용법”이고, 니는 “유모를 의미하는 한자. 여기서는 音 ‘내’의 차용으로 여성 지칭 명사에 연결되는 존칭의 접미사”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렇게 보면 앞의 ‘군’과 존칭의 접미사가 중복”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경신대왕니’에 대해서는 “원성왕비는 각간 김신술의 여 연화부인. 그러나 부인을 남편으로 지칭한 용례가 없어 미상”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경신대왕니’는 원성왕의 어머니인 조문황태후의 여자아우이기에 원성왕의 이모이면서, 경신대왕네로서 원성왕의 아내에 해당한다. 하지만 원성왕의 비는 숙정부인 김씨이며 신술 각간의 딸이기에 사실과 맞지 않다. 게다가 정병삼의 지적대로 신라시대에 아내(부인)를 남편의 이름으로 표기한 사례가 없기에 따르기 어렵다.
마침내 최연식은 “영묘사언적법사와 조문황태후(원성왕모후)의 니, 경신대왕(=원성왕)의 니 등 3남매”라고 하면서, “명문 중의 니는 유모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석하면 언적법사의 큰누이는 원성왕의 어머니인 조문황태후의 유모이고, 작은 누이는 조문황태후의 아들인 원성왕의 유모가 된다. 그렇다면 이들 3남매는 원성왕 외가에 속한 직접 친족이 아니라 두 누이가 각각 원성왕 어머니와 원성왕의 유모 노릇을 했던 또 다른 가족으로 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