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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비난’과 ‘비판’은 구분되어야 한다.

전영수 기자 입력 2022.10.23 16:27 수정 2022.10.23 16:27

성숙하고 올바른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 김천신문
‘비난(非難)’이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責)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며, ‘비판(批判)’이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 당연하나, 비판을 넘어 도를 지나친 비난을 하는 것은 문제이다.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면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잘못된 점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왜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갖고 있다 보니 말하는 이의 주관적 느낌과 견해가 들어가게 된다.

또한 말에는 인격이 들어있다.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교육수준을 가늠할 수가 있다.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파악하게 된다. ‘세치 혀가 사람 잡는다’든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경구처럼, 우리가 매일하는 말은 생각보다 위력을 갖고 있다.

말과 글은 눈에 보이는 인격의 편린이다. 글은 내면의 무질서한 대화를 의미 있는 성장형 대화로 치환하는 것이다. 통상 “나, 너, 우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다르다(different)'는 것이 ‘틀린 것(wrong)'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단지 의견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느낌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이나 상황에 대해 왜곡되고 부정적 시각을 갖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오해는 다른 사람의 선(善)한 행동도 이기적(selfish)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라고 뒤틀려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을 돌발적인 상황으로 인한 실수로 인식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본성과 의도가 빚어낸 결과라고 받아들인다.

상처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적이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으려고 할 때, 사람들은 공격적으로 변한다. 항간(巷間)에 비호감 여론이 회자되고 있다. 지역 주 소득원인 ‘샤인머스캣’의 미숙과 출하에 대한 불만과 비난, 제7회 전국 김천경제인 간담회 행사“를 예산낭비로 평가절하 하는 것이 그러하다.
 
필자도 지역 언론에 몸을 담기 전까지는 단편적 시각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와 전체적 안목을 접하게 되면서, 옳고 그름만으로 문제사안을 재단하는 기계론적인 이분법적 사고보다 상황논리를 이해하려는 신중한 접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역정치와 자치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공직자는 ‘수요자인 시민의 관점에서 사고(思考)’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실증적 자료가 뒷받침이 되고, 시민이 호응하는 정책을 책임지고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장과 이론은 다를 수밖에 없고, 제도상 미비점과 결여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먼저, 미숙과 출하 건은 공직자들에게 관리, 감독의 책임을 전가시키며 비난적 발언을 하기보다는, 시민적 공론을 모아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제도정비를 통해 재발행위를 방지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리고 김천경제인 행사가 예산낭비라는 지적도 성급하다. 투자와 기업유치를 위한 설득은 논리로 이성을 공략하기보다 유대관계에 정서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친분은 그 자체로 상대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 동향이란 유대감과 함께 자리했다는 것은 인연의 연결고리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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