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회종합 인물

세월이 흐른다 해도, 그 빛은 바래지 않는다.

전영수 기자 입력 2023.01.12 09:02 수정 2023.01.13 09:02

벚꽃 명소 연화지의 숨은 공로자, 박광화 공적비 방치에 대한 유감

김천 팔경의 으뜸으로 꼽히고 있는 교동 연화지는, 원래 조선 초기 농업용수로 이용할 의도로 축조됐지만, 김천시가 1993년, 부지 8,885평(29,372㎡)을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해 현재는 지역민들을 위한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박광화 김천시의회 제1대, 제2대 시의원 공적비

연화지는 봄철 개나리꽃과 활짝 핀 왕벚꽃이 낮에 봐도 아름답지만, 밤이면 경관조명과 어울려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벚꽃이 질 무렵 경관조명으로 수면에 비친 벚꽃과 흩날리는 꽃잎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나, 현재 전국적인 벚꽃 명소가 된 연화지의 기틀을 만들고 다진 것이 금산동 주민들과 박광화 전 시의원의 헌신적인 희생과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물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편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본다. 특히, 금산동 시의원을 지낸 박광화씨는 연화지의 역사이자, 숨은 공로자로 인구에 회자 되고 있다.

당초 농업용수를 위한 관개시설 용도의 연화지는 점차 물의 유입이 차단되고 생활하수 등 각종 오. 폐수가 모여들어서 슬러지(sludge, 汚泥)로 썩어가는 물로 방치되어 있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박광화 공적비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광화 시의원은 1992년과 1993년에 3억 원을 투입해 오. 폐수관로를 매설하고 일정 수준의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바닥의 흙도 준설했다. 또한 맑은 물 공급을 위해 직지천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는 배관도 새로 깔았다.

그리고 주변 조경을 위해 사철나무, 쥐똥나무 등을 식재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버리는 나무들도 구해왔다. 현재의 벚나무는 당초 직경 5cm를 시에 요구했으나, 예산 문제로 직경3cm로 심게 되었다.

김천예고 옆 사유지 밭에 방치되어 있는 박광화 공적비

이러한 주변 정비작업과 나무 이식에는 교동, 삼락동 통장, 부녀회장 그리고 새마을지도자 등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탰다. 그리고 박광화씨는 사재를 털어 노력 봉사를 하는 주민들의 식사를 마련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박광화씨는 시자문위원과 시의원을 지내며 연화지의 생태를 복원하고, 대구지법 김천지원과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의 삼락동 이전에도 역할을 했다.

이러한 그의 깊은 애향심과 지역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발전위원들의 자발적인 찬조로 공적비를 건립해 그 보답의 마음을 표출했다.

연화지

그러나 이 공적비는 도로 확장과 여러 이유로 외곽지에 무단 방치되어 있다. 누군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새겨 비를 세우는 분명한 근거가 충분함에도 바람이 계절을 몰아가듯 잊혀진다는 것을 결코 당연히 여겨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상대방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억마저 퇴색되고 종래는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내는 순간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산동 주민들의 가슴 속 한자리에는 항상 박광화라는 존재가 각인돼 있다. 그가 걸어갔던 길을 기록한 것이 바로 역사이다. 역(歷)은 삶의 흔적이요, 사(史)는 그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 새겨진 공적비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주민들은 너무나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박광화 공적비가 있는 비탈을 올라가는 입구

그의 삶의 흔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발 늦음으로 인해 안타까워하지 말고 소중할수록 더욱 관심과 마음을 쏟아주어야 한다. 지자체를 비롯한 시의회 차원에서도 연화지 역사의 한 편린이 되어버린 “박광화”공적비의 제자리를 잡아주는데 각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연화지의 연잎을 떠올리며, 박광화씨의 삶을 반추해본다. 연잎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물에 젖지만, 물에 가라앉지 않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물이 차면, 과감히 물을 비워 버리는 연잎...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취하는 분수를 알고 욕심 없는 것이 연잎이다. 박광화 삶 자체가 또한 그러하다.

사진 이남주 취재부장​




저작권자 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