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임산부 배려석이 뭐야?”
“엄마처럼 뱃속에 아기가 있는 사람만 앉는 자리야”
세 살 된 손자와 딸의 대화다. 때 이른 더위에 전동차 안은 후텁지근하기만 하다. 특별히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손자는 전동차 안의 글씨를 읽어냈다. 임신 삼 개월 된 딸과 세 살짜리 손자, 삼년 전 무릎 수술 후 여전히 걷기가 불편한 아내 그리고 나. 네 사람이 서울대공원에 가는 중인데 많은 승객들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전동차가 신도림에 도착하자, 임산부석에서 졸고 앉아있던 여성이 벌떡 일어난다. 딸이 앉으려는 찰라, 50대 중반쯤 된 뚱보 아줌마가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민다. ‘헐, 대한민국은 아줌마의 힘’이라더니.
임산부 배려석은 둘째 칸과 셋째 칸 출입문 앞에 두 개의 좌석으로 배치돼 있다. 좌석 위에 ‘임산부 배려석’, 분홍색 바닥엔 ‘이 자리는 임산부를 위한 자리입니다. 양보해 주세요.’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딸은 겉으로 태연한 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색이 창백해지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임산부 배지를 단 딸의 가방이 어깨에 걸려 있는데도 뚱보 아줌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부채질만 한다.
“아주머니!”
내가 큰소리로 부르자 아내가 손등을 꼬집는다.
“왜요?”
앙칼진 목소리로 그녀가 눈을 치켜뜬다.
“어, 어느 역에서 내리시는지요?”
쥐구멍을 찾는 쥐처럼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내가 어디서 내리던 말든 뭣이 궁금한데요. 아저씨가 뭔 상관이야!”
나는 그만 뒤쪽으로 돌아선다. 이따금 반대 편 유리창에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세 번째 전철역을 지났을 때다. 아줌마의 부스스한 파마머리가 옆자리에 책을 읽는 청년 쪽으로 자꾸 기울어진다. 청년은 자신의 어깨에 닿은 그녀의 머리를 피하려고 여러 번 앞뒤로 몸을 뒤척인다. 그러더니 청년은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린다. 그제야 딸은 다리 아프다 투정부리던 손자를 안고 빈자리에 앉았다.
전동차가 사당역에 도착한다. 승객들이 환승을 위해 일어나면서 서로 먼저 내리려출입문 쪽으로 몰리자, 밖에서 어서 타려는 승객들과 서로 어깨가 부딪쳐진다. 지하 철 환승 통로는 마치 커다란 파도가 출렁이는 듯하다. 평일이건만 갓난아이부터 초·중·고등학생, 청년, 중·장년, 노인 할 것 없이 행락인파가 넘친다.
4호선 지하철 플랫폼 벤치에서 우리 가족은 오이도행을 기다린다. 전동차가 도착할 때마다 승객들은 마치 썰물, 밀물이 오가듯 내리고 탄다. 두어 차례 전동차를 보낸 후 우리는 오이도행에 탑승한다. 4호선 열차 안은 2호선 못지 않게 붐빈다. 행동이 굼뜬 우리는 전동차 출발 직전에야 겨우 비집고 올라탄다. 4호선은 냉방 사정이 좋아서인지 공기가 쾌적하다. 우리 가족은 2호선에서와 같이 출입문 쪽 임산부 배려석 앞에 나란히 옆쪽으로 섰다.
이번엔, 코앞에 덩치 큰 배불뚝이 남자가 임산부석에 두 다리를 쫙 벌린 채 앉아 있다. 임산부석에 ‘남자 배불뚝이라니!’. 하지만 그는 주위의 시선 따윈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태도다.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잠시도 휴대폰 액정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가끔 히죽거린다. 게임에 이길 찬스가 온 모양이다. 그때다.
“할머니! 저 아저씨 뱃속에도 엄마처럼 애기가 들어 있나봐.”
기어코 세 살 손자가 한 마디 내뱉았다. 승객들이 일제히 킥킥대며 웃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배불뚝이 남자가 당황한 모습으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순식간에 승객들 사이로 사라진다. 내 가슴 속 팽팽한 고무풍선에서 ‘쉬익∼’ 소리와 함께 바람이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