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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한 편의 가요는 작사, 작곡, 가창으로 탄생한다. 여기에는 시대, 역사, 사람, 사연이 융화돼 있기 마련이다. 작사, 작곡, 가창, 시대, 역사, 사람, 사연이 한 편의 가요를 형성한다. 이러하기에 가요는 역사와 시대를 읽는 거울이요, 서민생활사의 진미를 맛보는 막사발이 된다. 서민의 생활과 밀착돼 있는, 삶의 한 보편적 문화양식으로서 세대를 뛰어넘기도 한다.
한국방송공사(KBS)의 전신 서울중앙방송이 남산에 있을 때다. 직원으로 일하던 하중희 씨가 남산 출근길 오솔길에서 빨간 구두를 신고 똑똑 소리 내며 걸어가는 아가씨를 보곤, 사무실에 들어와 노랫말 하나를 지었다. ‘좁다란 오솔길에 솔바람 불 때/빨간 순정 고이 지닌 빨간 구두 아가씨/뒷모습만 언뜻 스쳐 지나갔건만/그때 말 한 마디 못 한 탓으로 아직껏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그이/차라리 고백할 것을….’ 하는 심정으로 단숨에 썼다고 한다.
가요 “빨간 구두 아가씨”는 이렇게 태어났다. 라디오악단장을 맡고 있던 김인배 작곡가가 공개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남일해 가수를 불렀다. 복도 구석진 곳에 있는 피아노 앞으로 데리고 가더니, 작곡가는 호주머니에서 악보 하나를 꺼내어 피아노 반주에 맞춰 휘파람으로 멜로디를 불러 보인다. 몇 번을 연주해 보이더니 이 곡을 남일해 가수에게 불러보라 한다. 남일해 가수는 나름대로 곡을 해석해 특유의 저음으로 성심껏 부른다. 노래를 듣고 난 작곡가가 피아노를 쾅, 쾅, 쾅 두드렸다. 피아노 굉음에 놀란 가수는 ‘내가 노래를 잘못 불렀나’ 하고 있는데 작곡가가 “그래 바로 이거야!” 했다. 남일해 가수 스물세 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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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향촌동 수제화 골목에 조성된 가요 '빨간 구두 아가씨' 상징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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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요의 원창자는 태명일 가수다. 김인배 작곡제1집(텔스타레코드 TSL1001, 1964) 에 이렇게 돼 있다. 남일해 가수가 리바이벌해 크게 히트했다. 남일해 가수의 이 노래는 전국을 강타하며, 국내 톱클라스 트럼펫 연주자 김인배의 출세작이 되었다. 빨간 구두를 신고 사뿐히 걸어가는 아가씨의 걸음걸이를 경쾌한 스윙 리듬에 담아내어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애창한다. 한명숙의 “노오란 셔쓰의 사나이”(손석우 사, 곡)와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빨간 구두와’와 ‘노오란 샤쓰’를 통하여 산업화 시대의 청춘들이 어떻게 자유와 멋을 추구하려 했는지, 도시의 패션은 어떠했는지, 공동체의 감수성과 체험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빨간 구두 아가씨”가 뜰 무렵 이미 남일해 가수는 나화랑의 “이정표”(1960)로 가요계를 휩쓸다시피 하고 있었다. 손석우의 “나는 가야지”(문정숙), 백영호의 “동백아가씨”(이미자), 이봉조의 “떠날 때는 말없이”(현미), 박춘석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곽순옥) 등이 사회의 공용어 역할을 하고 있을 때다.
대구서 성장기를 보낸 남일해 가수에게 자신의 대표곡을 물어보면 “이정표”와 “빨간 구두 아가씨”를 든다. 지난 9월 대구경북에 또 하나의 가요역사 문화관광콘텐츠가 생겨났다. 대구 중구에서 향촌동에 ‘빨간 구두 아가씨 노랫말 거리’를 조성, 상징 조형물을 세운 것이다. 지자체가 가요 역사와 문화자원을 비즈니스화, 웰빙문화화 하여 우리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삶의 한 보편적 문화양식인 가요, 가요의 역사와 문화자원이 복지와 경제를 앞당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