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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종합

2026년 제16회 ‘신춘문예’ 샘문학상 공모전에서 이장재 수필가 ‘신인문학상’ 수상과 등단의 영광 안아

최병연 기자 입력 2026.04.27 14:52 수정 2026.04.27 14:52

2026년 제16회 샘문학상 신춘문예 공모전은 (사)샘문뉴스가 주최하고, (사)샘문학(구,샘터문학), (사)문학그룹샘문이 주관하며 서울특별시와 중랑구 등 23개 단체가 후원하였다.

ⓒ 김천신문
이 공모전은 K-컬처 시대에 맞춰 문화융합 솔루션을 런칭하여 이를 바탕으로 시대정신과 보편적 가치를 담아 이를 한류화하여 한국문학을 선도하고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혀 한국문학의 미래를 여는 대중문학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해나가기 위한 취지로 실시되었다.

이번 대회에 응모한 이장재 작가는 수필 부문에‘욕지도’와‘삼도봉 그리고 고향’2편의 작품을 응모하여,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에 따라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4월 25일 서울 중랑구청에서 거행된 시상식에서 신인문학상 상장과 상패 및 등단증을 함께 받았다.

ⓒ 김천신문
이장재 수필가는 당선 소감에서
“당선통보서를 받고 기쁨과 동시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 ‘맹구우목(盲龜遇木)’ 이었습니다. 눈먼 거북이가 백 년을 물속에서 살다가 숨 한번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 나무토막 하나를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기회라는….
소중하고, 귀한 등단 기회를 주신 이근배 심사위원장님과 심사위원님들, 샘문그룹과 우리 문학을 이끌어가시는 이정록 이사장님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용기를 북돋아 준 아내의 덕분입니다. 이제 첫걸음이지만 자전거를 처음 탈 때 처럼 눈은 멀리 앞을 보고, 두 손은 핸들을 잡고 달려 나가겠습니다.” 라고 밝혔다.

이장재 수필가는 경북대학교와 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35년간 교직생활을 하였으며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다. 경력으로는 통일부 통일교육 위원, 매일신문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김천신문 독자위원회 위원장, 김천복지재단 이사, (사)한용운문학 회원, (주)한국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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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지도
                                                     이장재(수필가, 김천신문 독자위원회 위원장)

나를 포함한 사촌 형제 셋은 경북 의성군 안사면의 깊은 시골 마을에서 한 살 터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1년 차이를 두고 선후배로 같은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를 마치면 늘 함께 모여 마을 어귀나 학교 운동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통학 거리는 20리가 넘게 멀어졌지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우리는 모교인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약속이나 한 듯 그곳에는 사촌들과 친구들이 이미 모여 있었고,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축구를 하며 뛰놀다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형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우체국 공무원이 되었고, 둘째인 나는 대구의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막내는 경산에 있는 사립대학 무역학과로 진학했다.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각자 결혼도 하고 생업에 바빠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문득 서로가 보고 싶어 텔레파시가 통했던지 내가 살고 있는 김천에서 만나 1박 2일 동안 회포를 풀며 함께 보내기도 했다.
다음 해 여름, 부산에 사는 막내가 전화를 해왔다. 아내가 친구들과 거제 근처의 욕지도와 연화도를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며 우리도 함께 가보자는 것이었다. 대구에 사는 형과 나는 각자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 막내와 합류한 뒤 욕지도로 향하였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욕지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미리 조사해 둔 맛집으로 유명한 짬뽕집을 찾았다. 줄이 길기로 유명한 집이라 잔뜩 기대했지만, 그날 준비한 재료가 모두 바닥났다고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어 막내가 배에 싣고 온 자가용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새 에덴동산과 유동, 덕동 해수욕장, 출렁다리까지 돌아보며 욕지도의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해 질 녘이었다. 바다 위로 노을이 펼쳐지며 만들어 내는 장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욕지도에 대한 기억은 차차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어느 스승의 날이었다. 졸업한 제자 김○동군이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왔다. 김○동군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으로 만나 가르친 학생이다. 이후 과학고를 거쳐 내가 중등학교 교직 생활 35년 중 유일하게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제자이기도 하다. 대학원까지 마친 뒤 로스쿨을 졸업했고, 지금은 유명 로펌의 파트너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자가 말했다. 부모님께서 얼마 전 욕지도에 있는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이사를 하셨다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곧바로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동안 식자재 납품 사업을 하시다가 정리하고 노후를 보낼 곳을 찾아 욕지도로 이사를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꼭 한번 놀러 오라고 거듭 당부하셨다.

몇 개월 후 어느 날, 현관문 앞에 대형 스티로폼 박스 하나가 택배로 도착해 있었다. 보낸 사람 주소를 보니 욕지도였다. 제자의 아버지로부터 보내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니 돌미역, 톳, 가자미, 감성돔, 고등어,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생선들까지 가득 들어 있었다. 거기에다 육지에서는 아직 나지도 않은 냉이와 달래까지 한가득이었다. 상자에서 올라오는 짙은 바다 냄새와 함께 학부모 부부의 정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드렸다.
“평생 처음 보는 고기와 해산물을 이렇게나 많이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육지 에서 사시던 분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구하셨어요?”
“돌미역이랑 톳은 긴 장화를 신고 가까운 해변에서 직접 채취했어요. 미역은 깨끗이 씻어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뒤 소분해서 냉동하면 오래 드실 수 있습니다. 톳도 씻 어서 바로 냉동하시면 되고요.”
잠시 후 학부모께서 웃으며 덧붙였다.
“생선은 출항하는 어선 일을 조금 도와주고 얻은 겁니다. 선생님 생각이 나서 보 내 드렸어요. 사모님과 맛있게 드세요.”
제자 이야기와 손자 이야기까지 나누며 한참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생선과 해조류를 종류별로 나누어 손질한 뒤 주변 지인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30년 전 제자의 부모님이 욕지도에서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작년 12월, 내가 불경을 공부하러 다니는 사찰에서 법회를 마친 뒤 스님과 차담회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스님은 뜻밖의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스님께서 룸살롱에 가본 적이 있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법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사연은 이러했다. 해군 군종장교로 근무하던 시절, 연말이면 의례적으로 섬 지역에 파견된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위로하는 법문을 하셨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욕지도에서 행사를 마친 후 한 부사관이 스님께 간청을 해왔다.
“오늘 꼭 스님을 모셔 가기로 약속한 곳이 있습니다.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꼭 가셔야 합니다.”
스님은 영문도 모른 채 차를 타고 해안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의 간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룸살롱이었다.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돌아갈 수도 없었다. 스님은 7번 룸에 앉아 기다리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하던 나이 지긋한 중년의 여성들이 룸살롱 영업이 끝난 뒤 룸으로 들어왔다고 하셨다.
그들은 스님에게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그중 한 여인은 고향이 인천인데 30년 넘게 집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가족과도 연락이 끊겨 부모님이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스님 계시는 절에 연등 하나만 달아 달라며 만 원짜리 한 장과 주소가 적힌 꾸깃꾸깃 접혀진 종이 한 장을 스님의 손에 쥐여 주며 부탁하더란 것이다.

그 사연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혈육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 것일까.
다음 날 아침 스님은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욕지도 선착장으로 나갔는데 전날 밤 룸살롱에서 만났던 여성들도 나와 있더란 것이었다. 밤새 룸살롱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같은 배를 타고 통영으로 향했다는….

그날 스님은 법문을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디에서든 불법을 실천하면 새로운 인연과 과보를 만나게 된다고.
나에게는 그 이야기가 더욱 깊이 마음에 남았다. 그곳이 우리나라 3,390개의 섬 가운데 하나이고 내게 추억이 많은 욕지도였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불교대학을 다니며 욕지도의 뜻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욕지는 극락을 의미하는 말로, 화엄경의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花藏頭眉問於世尊)’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욕지도 주변의 섬 이름도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라 불리는 것 같다.
나는 그 가운데 연화도와 욕지도를 다녀왔다. 특히 욕지도는 이름 그대로 연화세계, 곧 지상의 낙원처럼 아름다운 섬이었다. 나에게 욕지도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제자와의 인연, 그리고 스님의 법문까지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이 깃든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욕지도를 떠올리면 마음속에 잔잔한 바다와 함께 따뜻한 인연의 좋은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그 이름처럼, 욕지도는 내 삶 속에서 작은 연화세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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