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을 맞은 김천신문에 기획시리즈 ‘우리 고장 어제와 오늘’ 연재를 2015년 1월 15일 <아포읍편>으로 시작해 1년만인 12월 10일 <율곡동편>으로 마친다. 각 읍면동 역사의 현장을 취재해 22회에 걸쳐 격주로 보도한 기획시리즈는 각 지역의 역사, 유래, 전설, 특징 등을 알아보고 문화재, 유적지, 인물(생존인물은 제외)과 교육시설, 특산물, 자랑거리 등을 소개했다. 김천에 대한 애향심과 함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기획물‘우리 고장 어제와 오늘’을 취재, 보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2016년 새해에는 1천600여매 분량의 원고와 350여장의 사진이 수록된 책자로 발간해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약속드린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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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도시 전경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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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 ‘경천동지(驚天動地)’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거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대사건이 벌어진 격이니 분명 보통 일은 아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신석기시대 최초로 구성면 송죽리 감천변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우리 고장 김천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졌으나 아마도 김천혁신도시의 건설만한 대사건도 없을 것이다.
남면 용전리 일대를 중심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에 혁신도시라는 이름으로 2005년 첫 삽을 뜬지 십년 만에 그야말로 용이 승천하듯 우람한 빌딩이 숲을 이루고 말았다.
김천혁신도시의 법정동인 율곡동(栗谷洞)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사 이래로 조선시대 말까지 개령현 적현면(赤峴面)이었다가 1914년 적현면이 남면과 통합될 때 남면으로 속하게 됐다.
율곡은 농소면과 남면을 가로지르는 율곡천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옛날 하천변을 따라 밤실 일대를 중심으로 밤나무가 군락을 이뤄 밤율(栗)자가 붙은 것인데 마침내 혁신도시의 새이름으로 낙찰됐다.
고려시대에 인근 부상리에 역(驛)이 설치되면서 선산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가 되기도 했고 용전리 일대는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일약 김천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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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도시 조성 전 모습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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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는 자연적으로 볼 때 동쪽으로는 금오산과 제석봉, 남서쪽으로는 영암산과 백마산 등 산악지대를 이뤘으나 북쪽으로 가면서 율곡천과 연봉천, 월곡천을 따라 지미들, 역국들, 정문들 등 넓고 기름진 평야지가 전개돼 김천지방의 곡창지로도 이름이 높았다.
남면 용전리 전체와 옥산리, 운남리 일부, 농소면 신촌리와 월곡리 일부가 혁신도시로 편입돼 대대적인 신도시 건설에 들어가더니 마침내 2014년 1월 2일 율곡동주민센터가 개소됨으로써 새로운 김천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후 올해 6월 율곡동 369번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신청사를 준공하며 본격적인 율곡동 시대를 예고했다.
율곡동은 이전을 완료한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공단 등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전입을 독려하기 위해 관련부서와 합동으로 신규입주아파트 방문하는가 하면 공공기관에 전입신고 현장접수처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 등 실거주자들이 전입을 독려함으로써 일자리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적자원들의 유입으로 교육, 문화 등 생활환경도 개선돼 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결국 김천시의 최대현안인 15만 인구회복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동은 2015년 11월 말 기준 8천958명의 인구를 기록했으며 관외 전입율이 55.6%에 달한다. 이 가운데 서울, 경기지역 관외전입자가 2천482명으로 51%에 달해서 혁신도시의 인구유입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연령대별 인구현황을 살펴보면 타 지역과 달리 30대와 40대, 10대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 율곡동의 발전가능성에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율곡동은 2005년 12월 23일 건설교통부로부터 혁신도시 입지가 공표됨에 따라 남면 용전리 전부, 옥산리, 봉천리, 초곡리, 운남리 일부와 농소면 월곡리, 신촌리 일대에 115만평 규모의 경북혁신도시를 건설하게 됐다. KTX김천(구미)역사, 주요고속도로 통과 등 동서 교통의 중심지이며 12개 공공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새로운 성장의 중심축인 친환경 미래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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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도시 야경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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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동의 뿌리가 된 옛 마을의 지명과 전설
용이 승천했다는 용전리
혁신도시에 마을 터 전부를 고스란히 내어준 용전리(龍田里)는 용이 밭에서 솟아나 승천했다는 마을. 용과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무수히 간직한 유서 깊은 마을이다.
남면 소재지인 옥산으로부터 3㎞ 떨어져 운남리 종상과 봉천리, 초곡리에 접하고 있던 용전리는 용밭과 우래실 두 마을로 이뤄져 있었다.
용전리에 속한 용밭과 우래실은 원래 조선시대 말까지 개령현 적현면 용전동으로 속했으나 1914년 남면으로 이속됐다.
용전마을은 전체 70가구 중 60가구가 밀양박씨 복야공파(僕射公派) 후손으로 시조로부터 56세손인 박재희(朴再熙)의 3남 박문영(朴文寧)이 정조 때 이웃 봉천에서 용전으로 이주한 이래 대대로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뤘다.
또 어떤 자료에는 1460년(세조6년) 밀양박씨 박계우(朴季愚)가 단종복위 운동에 가담해 가족이 흩어졌다가 그 후손인 박수언(朴壽彦)이 영동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입향조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마을의 지명인 용전 또는 용밭은 입향조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하루종일 돌밭을 일구고 집에 들어와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는데 뒷산의 돌밭에서 청룡이 꿈틀대며 솟아오르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신기해 밭에 나가보니 큰 바위가 깨어져 있고 땅에 큰 구덩이가 파여져 있어 신기해하며 그 밭 이름을 용용(龍)자에 밭전(田)자를 써서 용전(龍田) 또는 용밭이라 했는데 훗날 자손이 번성해 밭 아래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지명을 용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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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용밭마을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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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때 솟아오른 용이 위쪽으로 길게 따라 올라갔다 해서 따를종(從)자에 윗상(上)자를 써서 종상(從上)이라 했는데 지금의 종상골이 되고 그 용이 남쪽의 산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고 구름운(雲)자를 써서 운남산(雲南山)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용전마을 앞에는 청룡산으로 불리는 산이 있었고 용이 구름을 타고 승천할 때 엄청난 비가 쏟아져 운남산 중 일부가 떠내려가다 멈춰 독립된 야산을 이룬 동미산이란 산이 있었다.
이밖에도 인근에 용과 관련한 지명과 전설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용전마을 뒤로 너븐등을 넘어 우래마을 방향으로 가다보면 들판 한 가운데 작은 대나무밭이 보이는데 바로 유명한 팔거도씨(八都氏) 정려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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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거도씨 정려각이 있던 자리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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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거도씨 부인은 용전마을에 살던 밀양박씨 박상남(朴尙男)에게 시집을 갔다.
혼례를 치른 후 신혼 첫날밤에 소피를 보러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밖을 내다보니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남편을 물고 봉우산쪽으로 올라가더라는 것이다.
부인은 맨발로 달려나가 온 산을 뒤진 끝에 호랑이를 발견하고 밤을 세워 싸운 끝에 호랑이를 물리치고 부상당한 남편을 구해 돌아왔고 이를 전해들은 지역유림에서 나라에 도씨부인의 용감한 행적을 상소해 부인에게 정려를 내리고 남편 박상남에게는 현령벼슬을 제수했다.
부인의 정려각은 1960년대까지 늠름하게 자리를 지켰으나 무상한 세월의 흐름 속에 무너지고 오랫동안 대나무만이 무성한 채 자리를 지키다 혁신도시 조성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부인의 정려각은 사라졌으나 정려각이 있던 앞들은 정문들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부인의 용기를 말해주고 있다.
용전마을 앞 저수지 인근으로는 가장골이라 불린 골짜기가 있었는데 마을에서 미성년으로 초상을 치른 경우 임시로 무덤을 만들어 뒀다 해서 가장(假葬)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용전마을은 마을 앞에 용전못으로 불린 큰 저수지와 드넓은 몽상계들의 중앙에 자리했었다.
용전마을 서쪽에 자리한 몽상계들은 일대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지로 알려지는데 몽상계(夢想溪)로 불리게 된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한 선비가 용전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앞 들판 개울가에서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한 도인이 나타나 집에 초상이 났으니 빨리 집에 가보라고 해서 혹시나 하고 집에 갔더니 실제로 부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문이 알려진 후 사람들이 신기한 꿈을 꾸는 들판이라 해서 꿈몽(夢)자에 생각할상(想)자를 써서 이 들판을 몽상계들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우래마을 뒤로는 삼밭골로 불리는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 삼베를 만드는 일대에서 가장 큰 삼밭이 있어 삼밭골이라 하고 한자로 삼마(麻)자와 밭전(田)자를 써서 마전골(麻田谷)이라고도 했다.
몽상계 옆으로는 장승배기들이 있었는데 옛날 용전마을과 지나는 길손들을 수호하고 이정표역할을 하던 장승이 있던 곳이라고 들 이름을 장승배기라 불렀다.
진작 장승은 사라지고 없으나 장승배기라는 정겨운 지명은 대대로 전해졌다.
용전저수지 옆으로는 승천하는 용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청룡산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청룡산으로 부터 뻗어 내린 바위가 길게 이어진 바위백이라 불린 큰 바위가 있었다.
용전마을 뒷산인 봉화산은 봉우재 또는 봉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아포읍 대신리 한골마을과 경계를 이룬다.
옛날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봉홧불을 피우던 봉수대가 있었다고 봉화산으로 불린다.
용전은 이웃한 우래실과 함께 마을의 대부분이 혁신도시 부지로 편입되고 주민들 중 14가구가 남면 봉천리 36-2번지 일대로 2009년 11월 이주해 새롭게 용전마을을 형성해 옹기종기 살고 있다.
용전마을 뒤 불당골산 아래에는 용전2리로 속하는 우래마을이 있었다.
우래못으로 불리는 못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동래정씨 몽성공파가 주로 살았으며 옛날 남면 부상리 부상역에서 개령면 양천리 양천역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한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내왕한 교통의 요지였다.
우래라는 지명도 벗(友)이 오고(來)가는 마을이라고 우래(友來)라 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일설에는 용전마을 뒷밭에서 솟아오른 용이 종상마을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운남산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할 때 우래마을 방면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해서 천둥을 뜻하는 ‘우레’라 했던 것이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우래(友來), 우래실(友來室)로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우래마을 너머 마을인 남면 봉천리 천동마을의 지명도 결국 천둥소리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 일대 지명 곳곳에는 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우래마을 앞 저수지 옆에는 안산으로 불리는 야산이 있는데 마을을 보위하는 영험한 기운이 서린 명당터로 유명했다.
이 안산은 혁신도시조성과정에서도 살아남아 앞으로 도심 속 공원으로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래마을 뒤에서 남면 초곡리 방면으로 산자락을 차돌배기라 불리는데 이곳은 옛날 부싯돌로 사용되던 차돌이 많이 생산돼 ‘차돌이 박힌 땅’이라는 뜻의 차돌배기라 불렸다.
1960년대까지 차돌광산이 들어설 만큼 번성을 누렸으나 이후 폐광되고 방치되다가 혁신도시 조성으로 끝자락에 이 일대가 포함되면서 그야말로 반짝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혁신도시 내 마을과 시설물 등에 대한 명칭부여용역을 의뢰받은 연구용역팀에서 차돌백이 근처에 들어선 변전소의 명칭을 차돌백이변전소로 명명하자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당시 용역팀의 보고서에는 “변전소라는 시설의 특성상 부정적 이미지로 비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토속적인 옛 지명을 활용해 친근감을 형성하고 실제 변전소가 위치하게 된 장소가 차돌이 많이 생산된 점을 감안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차돌은 단단한 돌의 상징이므로 안정적인 전기공급과 전기안전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와도 부합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산 앞으로는 똥고개라는 특이한 지명이 있는데 옛날 우래마을에 살던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치려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어느 날 시어머니와 함께 콩밭을 매러 이곳에 있는 밭에 나가 잠시 똥을 누러갔다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눈을 벗어난 후 선산 친정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큰 왕버들나무가 있던 이곳을 일컬어 똥고개라고 불렀다.
우래마을에서 신촌방향으로 가다보면 디링개와 찬물내기로 불리는 들판이 있었다.
디링개는 늘 물이 풍부해 물을 논으로 드리운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찬물내기는 물이 땅에서 솟아나 늘 물이 차다는 끗이 담긴 지명이다.
율곡천 옆으로는 진다리와 안가래로 불리는 들판이 있었는데 진다리는 논에 찰흙이 많아 논물이 마르지 않고 벼농사가 잘돼 들이 기름지다는 의미의 사투리인 ‘질다’와 논을 뜻하는 사투리인 ‘다래이’가 합성돼 진다리로 불렸다.
또 안가래는 우래마을입구의 도로변에 있는 들판으로 그 생긴 형상이 농기구의 일종인 가랫대와 같이 길쭉하게 생겨 안가래라 했다.
우래마을 뒤로는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있어 마을주민과 행인들이 쉬어가는 정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정자나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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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우래실 동목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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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들 전부를 내어준 용시마을
농소면 월곡리에 속한 용시마을도 앞들로 불리는 농경지 대부분이 율곡동으로 편입됐다.
앞들은 대부분 용시마을 주민들이 경작하고 있었는데 마을뒷산인 삼태봉이 용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형국이라 용소(龍所)라 불렸을 정도로 앞들일대는 명당으로 알려졌다.
율곡천을 경계로 용전리와 마주하던 앞들 일대는 율곡천변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관개가 편하고 토질이 비옥해 이 고장의 대표적인 곡창지로 불렸던 곳이다. 1964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미국 공병대 장비가 투입돼 경지정리를 한 지역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었다.
앞들일대는 주거용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율곡동의 주거문화를 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산고개 일대가 편입된 옥산리 모산마을
옥산2리에 속한 모산마을도 모산고개를 중심으로 몽상계와 지미들 등 상당수 경작지가 혁신도시로 편입되고 율곡동으로 이관됐다.
마을 앞에 큰 저수지가 있음으로 해서 지산(池山)으로도 불린 모산마을은 옛날 마을 앞을 지나던 갈항사 스님이 자손대대로 번창 할 명당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마을 앞에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을 보면 예언이 적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참나무들 일대가 편입된 운남리 종상골과 석정마을
운남리(雲南里)에 속한 종상골과 석정마을도 역시 마을일대 경작지 일부가 율곡동에 편입됐다.
운남1리인 종상골은 용전에서 솟아오른 청룡이 따라 올라왔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전하는데 김천지역을 대표하는 진주강씨 학사공파 집성촌이다.
종상마을 주택은 대부분 존속됐으나 마을 앞 참나무들과 상투말랭이 등 농경지 대부분이 혁신도시 부지로 편입되는 바람에 율곡동으로 이관되고 말았다.
□율곡동의 주요공공기관
혁신도시인 율곡동 관내에는 12개의 공공기관이 입주하는 것으로 결정돼 11월 말 현재 우정사업조달본부, 기상청 기상통신소, 조달품질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교통안전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국립종자원,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기술 등 9개 기관이 이전을 완료했고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한국건설관리공사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내년 2월까지 산학연유치지원센터 내로 에 임시청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한국도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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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로공사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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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는 1969년 설립돼 전국 고속도로 신설과 확장, 유지관리, 기술개발, 편의시설 설치 및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2천54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하 2층, 지상 25층 규모의 신청사를 2014년 6월 건립하고 11월 입주해 1천46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김천하이패스배구단을 운영하는 등 지역민과의 유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하면 곧 지역 내에 도로공사 직원들을 위한 주거타운을 건설할 예정이다.
한국전력기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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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력기술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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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기술은 우리나라 발전소 설계기술 자립을 목표로 1975년 설립돼 원자력과 화력발전소 설계, 발전소 모델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혁신도시 내에서 청사가 가장 높은 한국전력기술은 2천838억의 공사비로 지하 2층, 지상 28층 규모의 사옥을 올해 5월 준공하고 11월 입주해 2천494명의 임직원이 입주를 마친 상태이다.
한국전력기술은 발전소 설계와 건설뿐만 아니라 첨단 대기오염방지설비, 해상풍력발전 등 미래지향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신재생 에너지 기술로 새로운 성장동력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국가재난형 가축질병 및 식물병해충 예찰, 관리와 FTA대응, 검역강화, 농축산물 수출확대를 위한 대국민지원, 동물용의약품 품질경쟁력 제고, 동물보호 및 복지추진 등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1천111억원의 공사비로 지하 1층 지상 5층과 지하 1층 지상 3층 두 건물 청사가 12월 준공되면 516명의 임직원이 이전, 입주하게 된다.
교통안전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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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안전공단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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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안전공단은 육상, 항공, 철도 등 교통 전분야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교통안전사업을 전개하는 기관이다.
337억원의 공사비로 지하 1층, 지상 12층의 청사를 2013년 준공하고 2014년 4월 입주를 마쳤으며 318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주업무로는 도로와 철도, 항공안전관리, 자동차사고 피해가족지원, 자동차검사, 자동차 성능시험, 연구, 교통정보서비스, 교통안전 체험교육 등이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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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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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품질관리원은 농식품인증사업의 일환으로 친환경농산물인정, 유기가공식품인증, 농산물이력추적관리, 가공식품산업표준인증, 전통식품품질인증, 우수식품인증기관지정, 지리적표시, 술품질인증을 하는 기관이다. 그밖에 농업경영체 등록관리, 직불제, 면세유류 관리, 원산지관리, 안전성관리, 품질검사 등의 업무를 맡고 있기도 하다.
243억원의 공사비로 지하 1층 지상 4층의 청사를 2013년 11월 준공하고 한 달 뒤인 12월 입주를 마쳤으며 160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건설관리공사
한국건설관리공사는 안전하고 행복한 주거환경과 사회기반시설구축을 목표로 책임감리제도 도입 이후 감리 및 설계용역수행, 민간투자사업, 대형국책사업, 지자체사업 진행 등 사업 기획에서부터 계약발주, 설계, 시공, 유지관리, 건설사업관리, 사업타당성 검토 등 건설관리 사업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산학연유치지원센터 임차청사에 이달 중 입주할 예정이며 125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게 된다.
우정사업조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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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혁신도시에 가장 먼저 이전을 완료한 기관이다. 148억원의 공사비로 지하 1층 지상 4층의 청사를 2013년 4월 준공한 우정사업조달사무소는 1984년 전국우체국에서 사용하는 우정용 물자의 조달과 저장, 보급하는 업무와 우체국, 집중국 등 우정용 건축물의 건설 및 우편작업 기계화 시설의 건설, 유지, 보수 업무를 수행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 소속 기관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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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법률구조법에 의해 설립된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법률지식이 부족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률상담, 변호사에 의한 소송대리, 형사변호 등의 법률적 지원을 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또한 법률구조제도에 관한 조사와 연구, 준법정신 함양을 위한 계몽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105억원의 공사비로 지하 1층 지상 5층의 청사를 2014년 2월 준공하고 두 달 뒤인 4월 입주를 완료했으며 87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국립종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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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억원의 공사비로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청사를 2014년 5월 준공하고 7월 입주를 완료한 국립종자원은 93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종자·육묘관리 전문기관이다. 육성자 권리강화와 고품질 종자생산, 종자사업지원과 유통관리 강화를 목표로 고품질 식량종자의 안정적 공급, 품종보호권 권리강화, 종자유통조사, 국가 간 종자협력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조달품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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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품질원은 2007년 설립된 기관으로 품질기술경쟁 중심의 조달시스템 구축과 사전·사후 품질관리 활동 강화를 목표로 능력 있는 업체의 조달시장진입을 유도하는가 하면 부실업체와 물품을 퇴출시켜 국가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287억원의 공사비로 지상 4층의 청사를 2013년 11월 준공하고 12월 입주를 마쳤으며 83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범죄 없는 밝은 사회구현을 목표로 보호대상자의 사회복귀 지원역량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기관이다.
특히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과 사회복지사업법 등에 의거해 법무보호복지를 통한 건전한 사회복귀와 함께 효율적인 범죄예방 활동에 노력하고 있다. 2016년 산학연유치지원센터에 임차해 입주하면 24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게 된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청사를 건립할 계획으로 예산 확보를 추진 중이다.
기상청 기상통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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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김포기상송신소로 설립돼 1994년 기상통신소로 명칭이 변경된 기상청 기상통신소는 국내의 기상실황, 한국연안, 원양을 항해 중인 선박, 항공기 등의 기상정보를 필요로 하는 기관에게 무선통신으로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37억원의 공사비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청사를 2013년 3월 준공하고 6월 입주를 완료했으며 9명의 임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율곡동의 자랑
김천녹색미래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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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창의과학놀이터’를 지향하는 김천녹색미래과학관은 ‘미래를 위한 투자, 저탄소 녹색성장의 비전 제시’를 목표로 민자 340억원을 투자해 2014년 9월 19일 율곡동 중심부에 개관했다.
지상 4층 규모의 김천녹색미래과학관 1층은 기획전시실과 안내소, 2층 기후변화관, 4D폴돔영상관, 세미나실로 이뤄져 있으며 3층은 그린에너지관, 녹색문화플레이존, 4층 녹색미래관, 강의실 등으로 이뤄져있다.
에너지효율이 높은 신재생에너지인 지열과 태양열, 태양광 설비를 냉난방 열원으로 이용해 청정도시 김천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이름까지 정겨운 아홉 공원
율곡동은 도심 곳곳에 공원을 조성해 청정신도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자랑이다.
안산공원, 왕버들공원, 서낭댕이공원 등 4개소의 근린공원과 왜가리어린이공원, 삼산이수어린이공원 등 5개소의 어린이공원이 지역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각 공원의 명칭은 지역의 옛 지명이나 김천의 상징물을 활용해 친근감과 애향심을 고양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율곡동의 학교
율곡고등학교
율곡동 533번지에 위치한 율곡고등학교는 2015년 3월 1일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됐으며 3월 2일 7학급 170명(남 128, 여 42)이 모집돼 제1회 입학식을 가졌다. 율곡고등학교는 특히 경상북도교육청으로부터 10월 6일 자율형공립고로 지정(2016년 3월 1일~2021년 2월 28일)돼 2016학년도부터 학급당 20명, 7학급을 모집하게 된다.
율곡중학교
율곡동 7-142번지에 위치한 율곡중학교는 1955년 11월 11일 남면 옥산리 560-2번지에 도립 농남고등공민학교로 설립됐으며 1964년 1월 11일 농남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그해 3월 21일 개교됐다. 2014년 9월 1일 율곡중학교로 교명이 변경됨과 아울러 신축 학교인 현 위치로 이전됐으며 2015년 현재 제49회에 걸쳐 6천771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율곡초등학교
율곡동 649번지에 위치한 율곡초등학교는 2014년 3월 1일 6학급 103명으로 개교됐다. 김천혁신도시 조성으로 공공기관 자녀와 김천시내 인구 이동 등으로 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 2015년 8월 28일 20학급 562명으로 편성됐으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