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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이승하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실천문학사)이 발간됐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승하 시인의 이번 시집은 30여년의 정신병원과의 인연, 10여년의 “교화사업 강사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들락거”린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이승하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은 ‘벽 앞에서’, ‘감금과 감시’, ‘사이코드라마 시간’, ‘금지된 사랑’, ‘폐쇄병동의 누이’등 62편의 시가 2부로 나눠 편집됐다.
1부에 나오는 무기수와 사형수에 관한 시들은 한 사회의 모순이 어떻게 수인의 모습으로 발현되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죽기 전에 유언처럼 말했다/ 내가 죽인 사람이 저승에서 기다릴까요/ 만나면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조각상 같은 표정이 되기까지/ 악몽과 구토의 나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시집 맨 앞에 수록된 ‘출소’ 부분이다.
이승하 시인은 ‘벽’의 실체와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내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시집의‘교도소 시편’들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독자는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힌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증오와 분노, 공포와 불안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출소를 꿈꾼다. 그것에 이르는 것은 사랑과 용서다.
시집 2부에서는 시인의 누이를 만나게 된다. 폐쇄된 병동에서 청춘을 다보내고 초로(初老)에 도달한 ‘누이의 초상’은 보는 이를 눈물겹게 한다. 누이의 초상이 눈물겨운 이유는 늙어버린 어린 누이에 대한 연민 때문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꽃을 발견하는 시인의 성숙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내 사랑 내 자랑아 돌아가보렴/ 어린 시절 우리는 만화가였다/ 재미있는 것뿐인 세상/ 구름을 보고 있으면 구름처럼 변하는 세상/ 달을 보고 있으면 달을 따라 흘러가는 세상/ 세상은 그때,/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누이의 초상 2’ 부분이다.
이 시집의 ‘누이 시편’은 고흐의 “귀 없는 자화상”이며 폐쇄병동의 누이에게 바치는 연서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시가 인간의 부서지기 쉬운 마음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고통이 커질수록 시어는 더욱 분명하고 간결해진다. 삶의 고통을 시로 쓰는 일에서 자기 비판적 성찰이 없다면 고통의 세계를 온전히 그려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라비가 자주 면회를 오겠다고 거짓말하는 심정은 처절하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한 이승하 시인은 그동안 ‘사랑의 탐구’,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폭력과 광기의 나날’ 등 시집과 ‘젊은 별에게’, ‘공포와 전율의 나날’ 시선집, ‘길 위에서의 죽음’ 소설집,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 등 문학평론집이 있으며 수상경력으로는 지훈문학상, 중앙문학상, 시와시학상 작품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