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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0
1. 태동기(1956 ~ 1972): 김천간호고등기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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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대관식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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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시대적 격변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혼돈의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간호 분야에서도 질서회복과 사회재건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됐고 전쟁을 통해 간호사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각인됐다.
한국의 간호교육은 병원부설 간호학교 및 간호고등학교 과정이었다. 1952년 공포된 교육법 시행령에 의해 1953년에 간호고등기술학교는 교육과정 내 간호과와 조산과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입학자격은 중학교 졸업자로 해서 3년 과정의 고등학교 수준으로 했다. 그 당시 남한의 간호학교는 모두 15개교로 1천224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현실을 반영해 1956년 2월 13일 모암동 소재 도립김천병원 내에 김천간호고등기술학교가 개교됐다. 수업 연한 3년 과정, 정원 90명으로 문교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간호교육의 싹이 트기 시작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김천간호고등기술학교에서는 한 학년 정원을 30명으로 모집했으나 수업 연한 도중 엄격한 학사관리 운영으로 탈락생의 발생과 아울러 학생 개인사정 등으로 인해 1959년 2월 총 27명만 제1회 첫 졸업식이 학교에서 거행됐다. 1960년 2월에는 제2회 졸업식에서 20명의 백의의 천사들을 배출했다. 학교운영 도중 1961년 10월 1일 문교부의 학교정비 요강에 따라 폐교 조치됐다가 1963년 4월 9일 동일한 교명과 정원, 수업 연한으로 재인가를 받았다. 따라서 1962학년도 한해는 학생모집이 중단돼 1965년 졸업생은 배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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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졸업식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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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전기(1973 ~ 1991)
가. 김천간호전문학교(1973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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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간호전문학교 개교식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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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 18일 고졸 이상의 입학자격을 요구하는 대학으로 김천간호고등 기술학교가 문교부로부터 3학급 정원 120명의 김천간호전문학교로 승격 인가를 받았다. 이는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커지게 됨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기술인력이 고급화돼가기 시작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는 추세였다. 우리나라도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간호고등기술학교를 모두 3년제 간호전문학교로 승격, 개편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위치는 모암동 85번지(김천도립병원 내)였으며 경비와 유지방법은 경상북도교육위원회 특별회계로 유지 경영한다는 내용의 인가가 있었다. 1973년 12월 19일 1학급이 증설돼 6학급, 240명으로 학칙 변경인가 승인이 됐다.
1975년 간호전문학교 교장과 육성회장을 지낸 김외과 김태수 의원장으로부터 삼락동 480번지 4천177평을 기부 체납 받아 1976년 12월 22일 1동 10실의 삼락동 신축교사로 이전해 강의실과 실습실, 연구실 등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나. 김천간호전문대학(1979~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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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립김천병원 앞 기념촬영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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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정책에 따라 1979년 1월 1일자로 교육법(법률 제 3054호) 부칙 제2조 규정에 의해 간호전문학교에서 간호전문대학으로 개편인가를 받았다. 이에 1979년 3월 22일 서순조 교장이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지역사회의 유일한 의료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교수와 실험실습 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특성을 살려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간호요원을 배출하고자 1981년 10월 16일 졸업정원이 80명에서 120명으로 증설인가를 받았다. 1984년 11월 12일 졸업정원 120명에서 160명으로 증원인가를 받았으며 1989년 12월 4일 입학정원 160명에서 200명으로 증원인가를 받았다.
김천도립병원장이며 간호전문대학 교장을 역임한 김태수 박사가 설립한 학교법인 김산학원이 1983년 1월 28일 설립인가를 받음으로서 공립간호전문대학에서 사립간호전문대학으로 설립자가 변경됐다.
1983년 3월 8일 학교법인 김산학원 초대 재단이사장으로 김태수 박사가 취임했으며 1984년 1월 26일 김천간호전문대학 제8대 학장으로 이희종 학장이 취임했다. 1990년 4월 6일 학교법인 김산학원 제2대 재단이사장으로 사업가이며 인재양성에 뜻을 두고 교육사업에 헌신한 편재열 이사장이이 취임하게 된 것이다.
김산학원 설립자인 김태수 박사가 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1991년 6월22일 학교법인 김산학원을 양산학원으로 명칭 변경을 하고 1992년 11월14일 학교법인 양산학원 제3대 이사장에 편군자 이사장이 취임했다.
대학 2.0
3. 성숙기(1992 ~ 1998): 김산전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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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회 나이팅게일 선서식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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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학원 설립자인 고 편재열 이사장의 뒤를 이어 편군자 이사장이 취임한 1992년 이후 간호과 외에도 다른 과가 신설되면서 교명 변경을 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게 됐다. 1993년 12월 20일 ‘김천간호전문대학’에서 ‘김산전문대학’이라는 새로운 교명으로 변경했다.
1990년대 초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사회에서 지식정보화사회로 급격히 변화하는 시점에 있었고 많은 기업조직들은 정보와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보시스템을 도입해 구축하는 상황에 있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따라 컴퓨터 관련분야가 앞으로 유망할 것으로 보고 1992년에 2명의 전임교수를 초빙해 전산정보처리과(입학정원 120명)를 신설했다. 그 후 1993년 전산계산과(입학정원 80명)를 신설하고 1994년에는 정보통신관을 건립해 정보기술 분야를 대학의 또 다른 중요한 교육의 축으로 삼았다.
또한 1980년대 고도화 성장에 이은 차세대 성장 동력, 서비스산업의 최첨병을 담당하기 위해 경상북도 최초로 1996년에 피부미용과(정원 120명)를 신설했다. 실용학문 중심의 대학을 표방한 교육과정이었다. 1990년대 초 X세대를 시작으로 자유와 미를 추구하는 세대들의 중심에 헤어, 피부, 메이크업의 3박자 전공이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후 피부미용과는 매년 1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뷰티산업분야의 중요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들이 피부미용 관련학과를 신설하면서 피부미용과를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많을 만큼 전통 있는 학과로 성장,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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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김산황악축제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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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약기(1998~2014): 김천과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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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규격 잔디운동장 준공식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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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교육부에 전문대학의 교명을 자율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며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여 교명을 자율화했다. 이에 대학에서도 설문조사를 통한 여론 수렴, 회의 등 여러 과정을 통해 김산전문대학에서 1998년 5월 1일 최종적으로 김천과학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새로운 페러다임의 전개를 준비했다.
교명변경과 더불어 1998년 11월 19일 기존의 전산정보처리과와 전자계산과를 컴퓨터응용계열로 통합해 21세기 정보화, 디지털시대를 앞서 준비하는 학과로서 기업에서 요구하는 전문 인력과 생각하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인터넷전공(60명), 소프트웨어전공(60명), 멀티미디어전공(60명)으로 세부전공을 분할했다.
이와 함께 1998년 11월 19일 자동차기계과(60명)를 신설해 자동차 천만 시대에 걸맞은 자동차 전문 인력양성이라는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인 1999년 10월 25일 자동차기계과를 자동차기계계열로 계열화해 80명으로 증원하고 컴퓨터응용계열도 컴퓨터정보계열로 명칭을 변경해 6개의 전공으로 세부 분할했다. 2001년 7월 23일 전국 최초 도시디자인계열(6개 전공 180명)과 생활체육과(50명)을 신설했다.
2001년 수능 응시자가 87만명에서 2002년 74만명으로 13만여명이 갑자기 감소하는 시기를 거치면서 입학자원과 대학정원의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지방대학 기피현상의 심화가 나타나면서 신입생 충원과 학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2002년 9월 18일 학과 명칭을 변경, 2004년 10월 26일 공무원 양성을 위한 공무원인력개발과(60명)를 신설하고 학과 명칭을 변경하면서 입학정원을 900명에서 740명을 감축, 2005년 11월 30일 740명 입학정원을 610명으로 다시 조정하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었다.
급격한 사회구조 및 교육환경 변화라는 어려운 시기에 적응하기 위해 학과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2006년 9월 29일 철도경영과(40명) 신설, 2008년 9월 28일 한중교류과(30명), 호텔관광과(30명) 신설, 2009년 6월 12일 뮤지컬과(30명)를 신설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2010년은 10개 학과, 2012년엔 8개 학과(간호학과, 뷰티디자인과, 자동차과, 경호무도과, 사회복지과, 철도경영과, 국제호텔관광과, 연기뮤지컬과) 입학정원 610명으로 운영됐다.
김천과학대학은 2012년 5월 8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교명 변경 인가를 받아 학교 이름을 ‘김천과학대학교’로 변경했다. 2011년 7월 고등교육법 개정에 따라 전문대학이 ‘대학’에서 ‘대학교’로 변경 가능함에 따라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교명을 변경한 것이다.
2013년 교육부 지정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교육평가인증원으로부터 ‘2013년도 전문대학 기관평가인증’을 획득했고 2014에는 교육부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에 선정되는 등 작지만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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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과 전국 자작자동차대회 3연패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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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0
5. 특성화기(2015~현재) : 경북보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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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명변경 선포식에서 기를 흔드는 이은직 총장. 뒤에는 편군자 이사장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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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과학대학교는 개교 60주년을 1년 앞둔 2015년 경북보건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교육부 승인 2015년 5월 11일)
간호학과를 모체로 개교한 대학의 역사와 2014년 교육부로부터의 ‘보건산업분야 특성화 전문대학’ 선정, ‘글로컬 보건 특성화 대학’이라는 미래 방향성 등에 부합하고 제2의 도약을 위한 출발의 의미를 담아 ‘경북보건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2015년 6월 18일 기관단체장, 학생, 동문, 교직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교명 선포식에서는 1부 행사로 대학 교문에서 현판제막식, 2부 행사로 교내 목인과 시청각실에서 선포식 공식 행사가 진행됐다.
2014년 교육부의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 선정을 기반으로 경북보건대학교는 2015년 전국 유일의 한국전력기술 맞춤형 인재양성학과인 발전플랜트설계과(30명)를 신설하고 글로컬 보건 특성화 대학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7개학과(간호학과, 작업치료과, 뷰티디자인과, 보건복지과, 자동차과, 발전플랜트설계과, 철도경영과), 입학정원 392명으로 개편을 완료했다.
2015년에는 전국 전문대학 상위 14개 대학에 포함되고 대구·경북지역에서 유일하게 교육부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최우수 A등급’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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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명변경 선포식에서 기를 흔드는 이은직 총장. 뒤에는 편군자 이사장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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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월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