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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 추풍령과 가객 남상규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2.08.04 14:11 수정 2022.08.17 14:11

민경탁 전 본지 논설위원·칼럼니스트

ⓒ 김천신문
가요 ‘추풍령’의 남상규(본명 남영일) 가수가 지난주에 이 세상을 떠났다. 충북 청주 태생인 그는 1960년 현역 군인으로서 부산KBS 금주의 신인챔피언에서 우승해 전속가수가 되었다. 영화 “스타 탄생”의 주제가 ‘애수의 트럼펫’으로 데뷔해 ‘고향의 강’ ‘금호동 고갯길’ ‘산포도 처녀’ 등을 우리 귀에 익혀 준 가객이다.

구수하면서도 구성진 목소리, 특이한 제스추어로 그 시대의 감수성을 전하는 가요 ‘고향의 강’은 일본 번안곡. 재일교포 작곡가 원이부(일본명 하라 도시오)가 일본에서 발표했는데 당시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손석우 작곡가가 노랫말을 붙여 만든 곡이다. 이 노래가 히트하자 남상규는 패티김과 함께 일본 빅터레코드사에 초빙돼 한국의 옛 가요들을 많이 취입, 다년간 일본 무대에서 활동했다. 상당 기간 일본에서 활동하다 한 때는 신중현 사단에 관여하기도 했다.

추풍령은 1906년(고종 10) 경북 김산군(오늘날의 김천)에서 충북 영동군으로 편입이 된 곳이다. 이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해 태어난 가요 ‘추풍령’(1965)은 동명의 영화 주제가다. 영화는 추풍령 경부선 철로 김천구역과 지역사회 여러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전범성 감독이 노랫말을 짓고 백영호 작곡가가 곡을 붙여 탄생했다. 영화는, 추풍령역에서 삼대 째 일하는 주인공 춘보(김진규 역)의 가족성공담을 그려낸다. 자식에게만은 선로수 직업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춘보의 뜻을 받들어 아들은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철도국 간부로서 아비가 근무하는 추풍령역장으로 발령받아 온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충북 영동군 황금면은 추풍령면으로 이름이 바뀌고 영동군과 김천시 경계의 당마루 고개에 가요 ‘추풍령’ 노래비가 섰다.

추풍령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곳으로 문경 새재와 함께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주요한 길목이다. 이 고개에 스린 서민의 정서를 유장히 그려낸 가요 ‘추풍령’은 남상규를 인기가수 반열에 밀어 올렸다. 그의 대표곡이다. 한국 가요사에서 배호의 ‘두메산골’(1964), 오기택의 ‘고향 무정’(1966),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 ‘꿈 속의 고향’(1971), ‘고향역’(1972) 등과 함께 산업화 시대에 도시로 떠난 농촌 청년들의 애환을 대변하고 있다.

ⓒ 김천신문

남상규 가수 노래 중에 박정희 대통령의 미발표 시로 만들어진 노래가 있다. ‘님과 함께 놀던 곳’이란 노래다. 1975년 8월 초, 한 해 전 육영수 여사를 비명에 보낸 박정희 대통령이 거제 저도로 휴가 가서 쓴 시에서 탄생했다. “님과 함께 놀던 곳에/나 홀로 찾아오니/우거진 숲 속에서/매미만이 반겨하네//앉은 자리 밟던 자국/모래마다 밟던 자국/저 돝섬 백사장에/체온마저 따스해라//파도 소리 예와 같네/짝을 잃은 저 기러기/나와 함께 놀다가렴/나와 함께 놀다가렴//(박정희 작사, 배준성 작곡, 남상규 노래, 2003). 저 세상으로 먼저 간 부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짝 잃은 기러기에 투사돼 있다.

KBS 가요무대 프로에 나타나, 매혹적인 중저음으로 서정적인 노래를 전하는 남상규 가수의 실상을 이제 우리는 볼 수 없게 됐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대중의 생활변천과 사회적 맥락을 짚어내던 한 가객이 우리 곁을 떠났다. 시대의 실상과 체험과 그 정서를 대변하던 한 가요인이.
추풍령 고갯마루에서 노래비는 전한다. 가객은 떠나도 가요는 현실을 이겨나가는 구원으로, 위안으로, 또 몸짓으로 오래오래 남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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