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 군가 “멸공의 횃불”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2.10.20 13:48 수정 2022.10.20 13:48

민경탁 시인

ⓒ 김천신문
러시아에 다녀온 충정공 민영환이 고종에게 조선 군악대 창설을 제의했다. 충정공이 1896년 가을 윤치호 등을 대동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대한민국사절단장으로 다녀와서다. 사실상의 임무는 조선에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을 떨쳐버리려 러시와 밀약을 할 셈이었다. 목적 달성은 하지 못했지만 러시아 군악대 모습에 매료돼 돌아왔다. 민영환 일행은 10개 나라를 지나 먼 길을 에돌아 세계를 일주한 내용으로 「해천추범」이란 견문록을 남겼다. 충정공은 조선 최초의 신식 해군 해방영(海防營)도 설치했다.

조선 군악대는 1900년 독일인 프란츠 폰 에케르트에 의해 창설됐다. 백우용을 악장으로 해 서 45명 정도로 편성됐다. 에케르트는 독일 드레스덴음악학교 출신으로 기악과 작곡에 능한 음악인이다. 그는 일본 해군 군악대를 육성하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에 화음을 입혔다. 마침 일본의 임기가 만료되어 조선으로 초빙되어, 이듬해 조선 정부의 위촉을 받아 <대한제국 애국가>를 만들었다. 조선 음악계의 선각자 백우용, 김인식, 정사인 등을 가르친 그는 1916년 8월 6일 조선 땅에 뼈를 묻었다.

일제 강점기의 항일투쟁가, 독립군가는 조국을 잃은 국민에게 독립정신과 희망을 일깨웠다. 해방이 되고 현대식 군대가 결성되어 1946년부터 많은 군가가 나왔다. 국군 최초의 군가는 <해방 행진곡>(손원일 작사, 홍은혜 작곡, 1946. 1)이다.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한 작곡자는 작사자 손원일 제독의 부인. 부부는 이해 가을에 <바다로 가자>(원곡명 <바다의 행진곡>. 손원일 작사, 홍은혜 작곡, 1946. 10)도 탄생시켰다. <바다로 가자>는 가사와 선율의 조화가 빼어난 명곡으로 지금 해군 장병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군가다.
6·25 전쟁 때 육군 군예대장은 작곡가 나화랑이었다. 그는 1952년 1월 입대해 1954년 2월 에 공군 정훈음악대로 옮겨 근무하며 군예와 위문활동을 했다. 이 때 나화랑이 만든 진중가요가 <향기 품은 군사우편>(박금호 작사, 유춘산 노래, 1952)이다. 전쟁 도중 ‘행주치마 씻은 손에 … 능선에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으로 생사를 확인하는 여성의 심정이 라디오를 통해 널리 보급되면서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전두환 대통령의 장기곡이기도 하다.

군가 ‘멸공의 횃불’(국방부 제정 지구레코드공사 제작 1975) 음반

나화랑이 만든 군가가 <멸공의 횃불>이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1975년 국방부에서 노랫말을 공모해 당선된, 상병 서상모의 가사에 나화랑이 곡을 입혔다. 공산세력의 위협을 막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담긴 군가다. 가사가 1절은 육군, 2절은 해군, 3절은 공군, 4절은 일반인이 애창하도록 되어 있다. 불러보면 후렴의 마지막 구절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에서 국가 안보 의지를 마무리한다. 우리나라에서 4절까지 있는 유일한 군가다. 반공교육을 강조하던 시대에 이내 국민가요로 전파 되었다. 근래 국내 어느 가수가 군 기피를 위한 고의발치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누리꾼들이 ‘멸공의 횃불’을 검색어 1위에 올리기도 했다. ‘멸몽의 횃불’이란 조어도 생겼다. 이 가수는 이내 신곡을 발표했지만 아직도 인기를 회복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몇 해 전 육군의 어느 포병여단 정훈장교로부터 나화랑기념사업회에 <멸공의 횃불>을 부대 로고송으로 써도 문제가 없겠느냔 전화가 걸려 온 적이 있다. 카투사 부대에선 사병들이 아침 구보 때에 즐겨 부른다 한다. 이 군가가 대한민국 10대 군가에 든다는 집계를 본 적이 있다. 올해 백선엽 장군 추모음악회에서도 <멸공의 횃불>이 연주, 합창되었다.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멸공의 횃불> 가사를 바꿔 안내해 논란이 불거졌다. 영상자료에 제목부터 ‘승리의 횃불’로, 후렴에서도 ‘승리의 횃불’로 자막을 내보냈다. 현장의 장병과 참석자는 모두 ‘멸공의 횃불’로 불렀다. 말썽이 일자 국방부는 참석 외빈을 고려해 그랬다고 해명한다. 우린 아직도 휴전 중인 나라에 산다. 군인들의 정신전력, 나라 정신의 표현을 이래 가벼이 다뤄 되나. 군가는 대포에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라 했거늘.



저작권자 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