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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오월, 이 좋은 때에

권숙월 기자 입력 2015.05.05 05:28 수정 2015.05.06 05:28

함종순(주부․개령면 동부리)

며칠 전 아버지 기일을 보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며칠 되지 않아 동네 경로잔치에 나갔다가 할머니들 손에 이끌려 음악 장단에 춤을 추며 놀다 생각해보니 남들 보기 부끄럽고 아버지께 얼마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십 대에 시집와서 다른 젊은 엄마들과 함께 아기 업고 걸리고 유모차에 태워 점심 얻어먹으러 경로잔치에 갔다. 아기가 있어 일도 도와주지 못하고 먹기만 하고 돌아왔으니 “젊은 것들이 어른들 장만해 놓은 음식 먹기만 하고 설거지도 안 하고 간다”고 손가락질 했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때는 어른들이 “애나 잘 봐라. 애 보는 게 제일 큰일이다” 그러셔서 그런 줄만 알고 애 다 키우고 나면 어른들 경로잔치 우리 손으로 음식 장만해서 해드리리라 마음먹었다.

이십 대 때는 애 핑계 대고 부인회에 가입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크고 부인회에 가입해서 동네 초상집, 잔칫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제 뭔가 조금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부인회도 노령화가 되면서 조금 젊은 사람들은 직장 다니고 연배가 있는 형님들은 다리 허리 어깨 수술을 해서 어버이날이 되어도 일 할 사람이 없어 걱정이었다.

올해 어버이날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회의를 소집한 동장이 뷔페로 하자는 제의를 했다. 한 분은 아쉬운지 “칠십 된 사람도 안 아픈데 젊은 부인회원들이 왜 아프냐”며 “부인회장 어떻게 해봐요” 했지만 자신이 없어 웃기만 했다. 그러자 동장이 “그러지 말고 다들 며느리들을 하나씩 보내 봐요” 하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반장은 “동네 애 우는 소리가 안 나니 앞으로 큰일이여” 한다.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만 해도 한집에 애들이 둘씩, 골목이 복잡하게 해가 지도록 놀다 엄마 손에 이끌려 헤어지곤 했다.

어버이날이 되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도 와서 어버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돼지 잡고 쑥떡해서 막걸리에 지나가는 사람도 불러 음식 대접을 했다.
관공서에서도 찾아와 어르신들께 만수무강하시라고 인사들이고 동네가 떠들썩하게 풍악이 울리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 나와서 먹고 하루를 즐겁게 놀았다. 우리 나이 된 사람들은 “앞으로 십 년만 지나면 누가 우리 경로잔치 해 줄까!” 미리 걱정스러운 말을 한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고 시골동네가 너무 조용해 적막할 정도이다. 가끔 고물장사 확성기소리에 놀란 개가 짖고 닭이 우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 아기 울음소리가 안 들린다. 머지않아 우리 마을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동네가 북적북적 하고 학교 운동장이 떠나갈듯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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