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2월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알타몬트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프리 콘서트는 역사상 최악의 비극적인 공연으로 기억된다.
무료 콘서트로 진행된 이날의 공연은 시작 전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사정으로 인해 개최 장소부터 여러 차례 바뀌는 진통을 겪었고 갖은 어려움 속에서 마침내 성사되었지만 공연은 시작부터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 넘게 지연되며 삐걱거리고 있었다. 관중들의 짜증과 항의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고 어쩌면 그렇게 비극은 준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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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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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자 공연장은 이내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30여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 거대한 인파가 당대 최고의 인기 그룹 롤링 스톤즈의 일거 수 일투족에 흥분하고 환호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일간지의 칼럼은 그 날의 공연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콘서트는 30여만 명의 인파가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가운데 진행되었는데 이미 콘서트의 개념을 벗어난 듯 보였으며 그것은 마치 사교 집단의 의식과도 흡사했다.’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광란의 정도가 심해지며 콘서트가 점점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비극은 마침내 찾아오고야 말았다. 공연을 관람하던 흑인 소년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무대로 접근하는 순간, 로릴ㄹ 스톤즈가 공연의 질서유지를 위해 고용한 헬스 앤젤스 단원들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면서 이 흑인 소년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롤링 스톤즈는 팝계의 제일 가는 악동 그룹이었다. 밴드는 기괴하고 과격한 무대매너로 보수층의 비난의 표적이 되어 있었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엽기적인 행각으로 갖은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하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롤링 스톤즈와 로큰롤 진영을 향해 일제히 십자포화를 쏟아부었다. 언론은 ‘로큰롤은 섹스와 마약 폭력으로 얼룩진 온갖 추악스러운 범죄의 온상이라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증명되었다’ 며 연일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1960년대 후반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었던 히피들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사그러들었다. 록 음악 진영은 위축되었고 세상은 우향우로 나아갔다. 알타몬트의 비극은 그 시발점이자 중심이었으며 로큰롤을 죽일 빌미를 찾던 보수 진영에 반격의 단초를 제공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