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에 있던 화신백화점 앞 여정카바레에서 있었던 일이다. 손석우 작곡가가 그 카바레 악단장으로 있을 때다. 막간에 한 사나이가 이유 불문하고 무대에 뛰어 올라 탱고 곡 ‘서울야곡’(유호 사, 현동주 곡, 현인 노래. 현동주는 현인이 작곡할 때 쓰는 예명)을 부르니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는데 악단장은 그냥 놔 두라했다. 3절까지 모두 불렀는데 손석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1955년 그는 손석우의 알선으로 서울중앙방송국(오늘날의 KBS) 전속가수 공모를 통해 가요계에 공식 데뷔,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이 되었다.
그는 안다성(安多星 본명 안영길)이란 예명을 쓰는 가수가 되었다. 1930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청주로 옮겨 유년을 보내다가 신흥대학(오늘날의 경희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흔치 않은 학사가수다. 6·25 전쟁 당시 육군 군예대에 합류해 고대원, 송달협, 유춘산과 함께 군예활동을 했다. 그는, 노래로 말미암아 사람이 사투의 순간에도 두려움이나 공포로부터 큰 위안을 받는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감미로운 저음 미성을 지닌 그는 미국의 알토 성악가 메리언 앤드슨(Marian Anderson 1897-1993) 이름을 음차(音借)해 자신의 예명을 ‘안다성’이라 지었다. 우리 가요사에서 남가수 중 미성을 꼽으라면 남인수, 안다성, 한상일, 남일해, 오기택, 박일남, 홍민, 하수영 등을 들 수 있다.
안다성은 우리 가요사에서 송민도와 함께 방송 드라마 주제가를 부른 1호 가수다. 그와 송민도가 교환창으로 부른 ‘청실홍실’(조남사 사, 손석우 곡, 1956)은, 라디오 연속극이 인기를 모으던 그 시절 반향이 매우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게 영화를 제작하면서 주제가가 만들어져 히트하는데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다. 히트 곡이 다른 장르의 예술을 낳는 경우다. ‘황성옛터’(이애리수), ‘타향살이’(고복수), ‘목포의 눈물(이난영), ‘대전블루스(안정애, 영화명 ‘대전발 0시 오십분’)’, ‘이별의 종착역’ ‘검은 장갑’(이상 손시향), ‘동심초’(권혜경), ‘장희빈’(황금심), ‘회전의자’(김용만), ‘강화도령’(박재란)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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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성, ‘바닷가에서’ 음반 재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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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성은 탱고 곡을 감칠 맛 나게 잘 부른다. 라틴 음악에서 온 탱고풍 가요는 일제 강점기에 벌써 불려졌다. ‘추억의 탱고’(황금심)다. 우리가 기억할 만한 탱고 곡으로 ‘서울야곡’ ‘이별의 탱고’ ‘추억의 탱고’(이상 현인), ‘비의 탱고(도미), ’나의 탱고‘(송민도), ’망향의 탱고‘(진방남), ’보헤미안 탱고‘ ’굿바이 탱고‘ (이상 안다성), ’낙엽의 탱고(남일해) 등이 귀에 익은 탱고 곡들. 안다성 가수는 전성기에 탱고의 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가끔 그는 팬으로부터 박력이 없다는 충고를 받기도 했지만 프랑스 상송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의 히트곡 ‘꿈은 사라지고’(김석야 사, 손석우 곡, 1958), 세미클레식 풍의 ‘바닷가에서’·‘사랑이 메아리 칠 때’와 ‘에레나가 된 순이’를 아는 이는 안다. 드라마 “꿈은 사라지고”는 주제가의 위력으로 말미암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최무룡 주연이 직접 불러 특히 여성 청취자의 심금을 울리며 배우의 주가를 올려줬다.
11일, 매끈한 매력 저음의 안다성 가수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평생 노래로써 현실을 이겨가려는 신념으로, 시대의 체험과 감수성을 부드럽게 전해 주던 가객이 향년 93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가수들은 현실을 초극하려는 별들을 세상에 남기며 별이 된다. 이 세상을 떠난 또 한 명의 가객을 우리는 그리워하게 되었다. “바람이 불면 산 위에 올라/노래를 띄우리라 그대 창까지/달 밝은 밤은 호수에 나가 가만히 말하리라/못 잊는다고 못 잊는다고”(안다성, ‘사랑이 메아리 칠 때’) 별들과 호흡하면서.